전세계 예술가들, 왜 강릉 찍었나…'우덜 음악잔치'에 답 있다 [비크닉]

2025-10-04

뉴 로컬, 비 로컬

‘지방 소멸 위기, 로컬 산업이 해결할 수 있을까?’ 지역 기반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컬’ 브랜드가 나오는 요즘, 로컬은 지역 고유의 가치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미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입니다. 비크닉은 이러한 잠재성에 주목, 지역 산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키워가는 브랜드·크리에이터·이벤트를 집중 조망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시리즈 ‘뉴 로컬, 비 로컬’를 통해 정부·지자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움직임도 담아냅니다.

한반도의 등허리이자 푸른 동해와 눈부신 모래사장을 품은 도시, 강릉. 이 곳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교통의 요충지로 삼국시대부터 주요한 기능을 해온 역사 깊은 지역입니다. 옛 지역명인 ‘하슬라’는 ‘큰 바다’ 혹은 ‘아름다운 자연의 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강릉의 품새를 잘 드러냅니다. 바다와 산맥을 잇는 자연환경도 장관이지만 국가무형유산인 ‘단오제’와 같은 지역 문화 자원이 풍부한 곳이기도 합니다.

올 여름 심각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 예술의 단비로 지역 경제 침체를 딛고 일어서려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 중심은 지난해 첫 시작을 알린 ‘하슬라 국제예술제’입니다. 전 세계 유명 예술가들이 출동해 클래식을 중심으로 무용·미디어아트·문학 등 다양한 예술이 어우러지는 현장이 펼쳐지죠. 올해는 ‘선물(Gifts and Presents)’을 주제로 이달 18일부터 26일까지 강릉아트센터를 비롯해 강릉시 전역에서 행사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치유와 연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예술제의 핵심이에요.

강원도 출신 피아니스트, 예향의 도시를 재발견하다

그런데 강릉에서 국제예술제가 탄생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예술감독인 조재혁 피아니스트를 만나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조 감독은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강릉은 부모님의 고향으로 자주 왕래하던 곳이라고 하는데요. 예술가로서 그는 미국 명문인 줄리어드스쿨에서 학사와 석사를 거쳐 뉴욕 맨해튼 음악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스페인 마리아 카날스 콩쿠르 1위를 수상하며 세계를 누비며 연주 활동을 한 인물입니다.

그가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강릉은 예술제가 열리기에 최적의 장소였대요. 전 세계적으로 예술제가 열리는 지역은 큰 도시보다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춘 곳이 많았다는 이유에서죠. 그는 “강릉은 차 문화나 단오제를 비롯한 문화 전통이 살아있는 예향의 도시”라며 “첼리스트 송영훈, 바이올리니스트 후미아키 미우라와 함께 머리를 맞대어 행사를 구상하게 됐다”고 회고했습니다. 다른 예술제와 남다른 점으로 내세운 건 ‘강릉의 지역 커뮤니티와의 긴밀한 연결’ 그리고 장르 간 경계를 허문 ‘복합문화예술’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지역 커뮤니티 잇는 ‘우덜 음악잔치’

하슬라국제예술제는 강릉아트센터와의 공동 주최로 열립니다. 전문 공연 시설을 갖춘 이곳에서 주요 공연이 열리죠. 그 외에는 강릉 지역 곳곳에서 무료 공연을 펼칩니다.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음악제를 기획한 건데요. 강릉 사투리로 ‘우리들’이라는 뜻의 ‘우덜’을 붙인 ‘우덜 음악잔치’로 명명해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는 편견 대신 친근함을 강조했어요. 행사 기간 중 강릉아산병원을 비롯해 아시아 최초 호스피스 병원인 갈바리의원·초당성당·강릉원주대학교 하슬라홀·아르떼뮤지엄 강릉에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질 예정입니다.

지난해, 이 낯선 형태의 공연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주최 측의 우려와 달리 많은 시민이 공연장에 모여 큰 호응을 보냈다고 합니다. 강릉 시민들의 문화 관심도가 한몫했습니다. 평소 공연이나 뮤지컬이 열리면 강릉에서 매진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지난 첫 회 때 방문객 비중을 보면 강릉 시민 및 강원도민이 90%, 나머지가 외부 방문객입니다. 이 축제가 지역과 어떤 접점을 맺고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죠. 방문객도 중요하지만 ‘지역 축제가 지역 커뮤니티에서 고립되면 안 된다’는 방향성이 들어맞은 겁니다.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모인 융복합 무대

올해 예술제의 키워드는 ‘융복합’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와 버무린 기획이 눈에 띕니다. 한국 모더니즘 시인 김광균의 작품을 토대로 작곡가 최우정이 드라마 형식으로 구성한 ‘추일서정’, 신윤복의 ‘미인도’를 재해석한 미디어아트를 배경으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쇼팽 ‘24개의 전주곡’을 연주하는 ‘하슬라와 라카이: 상심열목’이 하이라이트 무대입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를 재치 있는 해설로 들려주는 ‘어린이와 어른이: 동물들이 말을 해요!’도 공연의 새로운 시도입니다.

이 밖에도 베토벤·쇤베르크·슈베르트·차이코프스키·스트라빈스키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데요. 피아니스트 이경숙·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후미아키 미우라·나나 마츠우라· 치사코 나오베를 비롯해 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은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H. I. P. (Hasla International Players)·강릉시립교향악단 등 국내외 주요한 예술가들이 총출동하죠. 강릉을 여전히 해수욕장, 혹은 커피의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면 ‘예술’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할 때입니다.

Interview 조재혁 하슬라국제예술제 예술감독·피아니스트

“결국 중요한 가치는 사람들 간의 연결과 공감대”

강릉의 지역성이나 맥락을 반영한 점이 있다면.

“강릉은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역 주민의 삶이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우덜 음악축제’가 열리는 갈바리의원은 아시아 최초의 호스피스 병원이고 1996년 설립된 초당성당은 강릉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으로, 특이하게도 유선형으로 지어졌다. 공명이 많이 울리기에 음악하기에는 딱 맞는 요건인 거다. 고래책방, 아르떼뮤지엄 강릉 등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있는 곳들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갈바리의원에서 연주할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모든 것이 조심스러운 공연이었다. 소수의 인원으로 최대한 조용히 진행하고자 했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니까 분위기가 바뀌었다. 일주일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던 환우분이 음악을 들으러 나왔고 의원에서 일하는 직원과 자원봉사자까지 작은 리빙룸을 가득 메웠다. 고요하고 정적인 공연이 아닌 축제의 현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행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점은.

“지난해에는 발레리나 김주원, 발레리노 김현웅 등 무용과 음악을 결합한 무대를 선보였다. 올해는 더 다양한 장르로 가능성을 열어뒀다. 단, 장르 하나가 튀는 게 아니라 동일한 관계로서 어울리는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올해 선보이는 ‘추일서정’은 초연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시인 김광균의 가족들을 만나며 그분의 삶을 더 자세히 알게 됐는데 한편의 드라마 같은 전개가 인상 깊었다. 최우정 작곡가가 구성을 짜고 소프라노 이명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윤의 목소리에 배우 김미숙이 시를 낭독을 하고, 미디어아트가 어우러지면서 점점 풍성한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또 새롭게 시도한 점이 있다면.

“지난 행사 때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오지 못해 아쉽다’는 시민의 피드백이 있었다. 그래서 0세부터 누구나 올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모아 ‘어린이와 어른이: 동물들이 말을 해요!’라는 공연을 기획했다. 기왕이면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에 동물 소리도 내보고, 여러 가지 해설도 곁들였고, 공연을 보면서 그려볼 수 있는 프로그램 북도 만들고 있다. 아이들이 중간에 울거나 대화해도 걱정 없는 자유로운 공연인데 모두 처음이라 해봐야 알 것 같다.”

지난해 첫 행사를 치면서 느낀 점은.

“하슬라국제예술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강릉아트센터다. 기획 단계에서 심규만 관장님을 만나러 갔는데, 이왕이면 함께 해보자며 적극적으로 나서 주셔서 큰 힘이 됐다.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또 매회 공연마다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통해 청중과 연결점을 만드는 걸 원칙으로 한다.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던 보이지 않는 막이 걷히는 게 느껴진다.”

앞으로 목표는.

“지난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이 ‘내년에도 하나요?’ 였다. 워낙 일회성으로 끝나는 행사가 많아서 그렇다. 하슬라국제예술제는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는 강릉의 예술제를 목표로 매년 나아갈 예정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제일 중요한 건 좋은 기획을 실현하고 이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가뭄으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는데, 관객들에게 좋은 선물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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