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제자 500명이 고향 박물관에 살고 있다

2025-10-03

추석 전국 국립박물관 나들이

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를 맞아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특히 이번 추석 연휴는 3일 개천절을 시작으로 9일까지 6일간 이어져 어느 때보다 느긋하게 고향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모처럼 얻은 황금연휴 기간 동안 고향집 주변에 위치한 국립박물관 나들이를 계획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잘 연계한 특별 기획전이 한창이다.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

·국립청주박물관 ·12월 28일까지

청주=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2008년부터 이어온 국립청주박물관과 일본 야마나시현립박물관 학술교류의 결실을 선보이는 자리다. 일본의 중요문화재 13점, 야마나시현 지정문화재 6점 등 국보급 문화유산이 한국을 찾았다. 야마나시현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후지산을 끼고 있어 이번 전시의 내용 또한 후지산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는데 1부 주제는 ‘후지산에 오르는 첫 걸음: 자연이 깃든 야마나시’로 야쓰가타케 산기슭에서 출토된 일본의 중요문화재 조몬토기와 토우 30여 점이 전시된다. 조몬토기란 일본 신석기시대(기원전 1만3000년경~기원전 300년경)에 제작·사용된 대표적인 토기로 밧줄 무늬(줄무늬) 장식이 특징인 유물이다. 2부 ‘에워싼 산의 중턱: 야마나시, 불교와 무사의 시대’에선 현에서 가장 오래된 금동보살상, 경전을 담은 통 등 불교문화유산이 전시된다.

3부 ‘오르다: 대중문화 부흥과 우키요에’에선 에도시대 대중예술 속 후지산을 조명한다. 우키요에란 17~20세기 초 일본 에도 시대에 유행했던 풍속화로 주로 강렬한 컬러의 다색 판화로 제작됐다. 우키요에 화첩이 도자기 등 상품을 포장하는 포장지로 사용되면서 유럽으로 건너가 고흐·드가 등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전시에선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로 유명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작품들이 다수 교체 전시되는데, 9월 30일~10월 12일에는 호쿠사이의 명작 ‘후가쿠(후지) 36경’ 중 ‘청명한 바람과 붉게 빛나는 후지(凱風快晴, 일명 붉은 후지)’ ‘온덴 마을(현 하라주쿠)의 물레방아’ ‘고이시카와의 눈 내린 아침’ ‘신슈의 스와호’ 4점이 전시된다.

4부에선 ‘야마나시와 함께: 협력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1913년 조선을 찾은 아사카와 형제를 통해 한·일 문화 교류의 의미를 돌아보는 내용이다. 2027년에는 한국의 문화유산이 야마나시현립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창령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

·국립춘천박물관 ·상설전시

춘천=국립춘천박물관 브랜드실에는 박물관 대표 소장품인 ‘창령사 터 오백나한’이 전시돼 있다. 2001년 영월 창령사 터에서 출토된 이후 서울·부산·시드니 등 국내외 도시로 나들이를 갔던 오백나한이 집으로 돌아와 자리 잡은 곳이다.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인 나한(羅漢)은 석가모니 제자이자 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를 일컫는다.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함 속에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간직한 오백나한의 표정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누군가의 소리 없는 위로가 필요하다면 시선이 맞는 나한 앞에 잠시 머물러도 좋겠다.

제주에 나빌레라-석주명 특별전

·국립제주박물관 ·10월 19일까지

제주=‘나비 박사’ 석주명(1908~ 1950)과 제주의 인연을 다룬 전시다. 1943년 4월부터 2년 1개월 동안 제주에 머물었던 석 박사는 나비 연구는 물론, 제주어 어휘 7000여 개를 수집·정리하고 16개 마을의 인구를 조사하는 등 제주의 인문사회를 함께 연구했다. 1947년 발간한 『제주도 방언집』은 ‘제주어’라는 용어로 제주 방언을 주체적으로 다룬 최초의 서적이다. 이번 전시에선 그가 집필한 6권의 ‘제주도총서’와 『제주도 방언집』 『제주도의 생명조사서』 『제주도 수필』을 비롯해 한국의 나비를 255종으로 정리하고 212개의 동종이명을 제거한 『조선산 접류 총목록』(1939) 등 석주명 나비 연구 성과를 모은 도서와 전자책들이 선보인다.

동시에 석 박사가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적 생태도”라고 극찬했던 조선시대 서화가 남계우(1811~1890)의 나비 그림도 전시된다. 석 박사는 남계우의 그림 속에서 37종의 나비 종류를 판별했다고 한다. 관람객들 역시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나비 그림을 감상하며 QR코드로 그림 속 나비의 종류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나비의 방’에선 금으로 만든 나비 장식 귀이개 등 고려시대부터 전하는 한국 나비 관련 공예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석주명의 연구 성과를 지키고 후대에 전해준 동생 석주선이 재현한 창덕궁 활옷도 함께 전시됐다.

탑이 품은 칼, 미륵사에 깃든 바람

·국립익산박물관 ·2026년 2월 1일까지

익산=2009년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에서 발견된 ‘미륵사지 손칼’을 최초로 공개하는 자리다. 639년 석탑에 봉안된 이후 약 140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손칼은 원형을 알기 힘들 만큼 부식돼 그동안 실물 공개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익산·청주·김해국립박물관이 상호 협업해 과학적 분석과 보존처리, 심층 연구를 진행한 결과 비로소 관람객과의 첫 만남이 성사됐다.

손바닥만 한 작은 칼 안에 응축된 백제 불교문화와 금속공예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제1부 ‘작은 칼이 필요했던 일상’ 공간에선 쇠 손칼, 동물 뼈로 만든 칼 손잡이 등을 전시한다. 또한 붓이 없는 시절 글을 쓰고, 지우개가 없던 시절 목간의 글자를 지우는 등 문자 생활의 도구였던 손칼의 또 다른 기능을 살펴본다. 2부 ‘흔적, 몰랐던 이야기’ 공간에선 과학적 조사를 바탕으로 재현한 손칼의 내부 구조와 제작 재료, 봉안 시 감쌌던 직물 자수를 전시한다. 특히 3차원 X선 현미경으로 칼 손잡이 목재를 조사한 결과 외래 수종임이 밝혀졌다. 또한 일부 손잡이는 물소 뿔로 추정되는 재료가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먼 나라에서 귀한 재료를 구해올 만큼 활발했던 백제 문화의 국제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3부 ‘꾸밈을 더하고, 마음을 담아’ 공간에선 권위와 품격의 상징으로 무덤과 불교 공양품으로 사용됐던 손칼들을 소개한다.

시간의 공존: 김해 대성동 고분군

·국립김해박물관 ·2026년 2월 22일까지

김해=가야고분군이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2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다. 지난 35년간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토기, 철기, 대외교역물품, 원통모양 청동기, 동·식물, 유기물, 인골 등 가야를 대표하는 고고자료 100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특히 대성동 11호분에서 출토된 가죽방패와 화살통은 국립김해박물관이 전문 연구가와 함께 국내 최초로 원형대로 복원해 소개하는 유물이다. 또한 원통 모양의 청동기 7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는데, 그중에는 연구자들에게만 알려졌던 리움박물관 소장품도 처음 전시된다.

이밖에도 금동관, 크리스털과 다양한 유리로 엮은 목걸이, 고대 동아시아 권위자들만 착장한 금동대금구 등과 함께 대외교역품으로 알려진 청동 솥, 청동 바리, 바람개비 모양 청동기들이 선보인다. 폭 18m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가야 왕의 실감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한성, 475-두 왕의 승부수

·국립공주박물관 ·2026년 2월 22일까지

공주=백제와 고구려의 갈등의 역사를 배경으로, 475년 백제 개로왕과 고구려 장수왕이 맞붙었던 한성전투를 조명한 전시다. 당시 사용했던 무기·갑옷 등 450건을 전시하는데 그중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철제 갑옷과 광주군 선리(현 경기도 하남시)에서 발견된 ‘쇠뇌(방아쇠를 당겨 활을 발사하는 기계식 활)’는 처음 전시하는 자료다. 화성 사창리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역시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다.

전시는 기·승·전·결 4부로 구성되는데 2부 ‘두 왕의 대국’에서 개로왕과 장수왕이 20년 넘게 벌인 전략 대결을 바둑 기보로 재해석한 점이 눈에 띈다. 역사학·고고학 연구 성과에 상상력을 더하고 영화적 연출과 서사를 입혀 연극배우가 연기한 대형 프로젝션 맵핑 영상은 한성전투 현장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동화 속 세상, 하늘만큼 땅만큼 신나요

우리 하늘만큼 땅만큼

·의재미술관 ·11월 30일까지

광주=소치 허련을 잇는 남종문인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을 기념하는 의재미술관이 처음으로 동양화가 아닌 장르에 문을 열었다. 웃는땅콩어린이재단이 준비한 어린이 전시·체험 프로그램이다. 의재의 손자이자 동양화가인 허달재 화백은 “아이들이 보고 오래 기억에 남을 전시를 매년 열 계획”이라면서 “이번 전시가 우리 후손들이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미래 세대를 이끌어나갈 넓은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전시는 총 3개 층으로 구성됐는데 1층 제1전시실은 웃는땅콩어린이재단이 지금까지 출간한 동화책 9권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2023년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을 수상한 이지연 작가의 『이사가』를 비롯해 『나는 누굴까』(허달재), 『모두 나야』(이성표), 『굴뚝 귀신』(이소영) 등을 전시하는데 전지 크기로 확대한 동화책과 책 속 내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설치물을 함께 전시했다. 예를 들어 『굴뚝 귀신』 옆에는 골판지로 만든 커다란 집이 있어 아이들이 창문을 하나 하나 열어보면서 실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가』 옆 바닥과 벽에는 책 속 주인공인 개미들의 이동 경로를 그려 놓아 아이들이 직접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

2층 제2전시실에선 ‘세계시민 어린이’를 모토로 한국어·영어·중국어 3개 언어로 제작한 재단의 교육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지하 1층에는 플레이모빌로 꾸민 놀이체험 공간과 함께 바람소리·풀벌레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즐길 수 있는 방도 만들어 놓았다.

전시 기획과 설치물 제작을 지휘한 이강현 홍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는 “기존의 동화책 전시에선 원화와 텍스트만 즐길 수 있었다면, 이 전시는 책 내용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체험 위주의 공간으로 꾸몄다”며 “컴퓨터와 휴대폰에만 익숙했던 아이들이 동화책을 보며 ‘이게 뭐지?’ 질문하고 하나씩 경험하는 재미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전시가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의재미술관 통유리창 밖으로 무등산 자연이 펼쳐진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자연보다 더 좋은 놀이공간이 있을까. 첨언하면, 이곳에 전시된 동화책들은 이미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도 소문난 책들이다. 더불어 책 속 내용을 현실로 반영한 설치물 아이디어들이 놀랍고 흥미롭다. 동심의 세계를 접하고 싶은 ‘어른이’들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전시다. 10월 25일과 11월 1일에는 무등산 속 숲길을 걷는 ‘올빼미 달빛 기행’도 진행된다.

사진가 조선희가 엮은 2050의 머릿속

ZZ idea

·ZZ on ·10월 26일까지

서울=조선희 사진작가가 성수동에 오픈한 복합문화공간 ‘ZZ on’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공식 프로젝트다. 연무장길 맨 끝자락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은 사람으로 치면 올해로 50세다. 1975년부터 성수동을 지켜온 터줏대감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남긴 낡고 더러움은 어쩔 수가 없다. 조 작가는 “힘들고 지친 50대 내 친구처럼, 오래된 건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다. 건물 겉면을 덮은 작은 타일들을 떨어내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그대로 노출시킨 후 통유리창을 붙여 힘차고 밝은 공간으로 새 이미지를 연출했다. 지하1층 역시 콘크리트 뼈대와 벽만 남겨서 탁 트인 갤러리 공간으로 조성했다.

조 작가는 “나의 놀이터 겸 내 친구들의 놀이터”라며 “나이 들어가면서 여전히 자신이 젊다고 생각하는 50대 우리와 진짜 젊은이들인 젠지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하 갤러리 전시공간에도 50대 사진가 조선희의 사진과 40대 사진가 김상덕의 사진, 20대 디지털 페인터 코코의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 현자의 얼굴을 닮은 바위와 나무를 몇 년 간 계속 관찰하며 촬영해온 김상덕 사진가의 사색적이고 묵직한 흑백사진과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화사한 컬러의 일러스트들의 조합은 어색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환기시키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건물의 지상 1층부터 3층까지는 20대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브랜드 ‘오키드랩(Orchid(E)lab)’ ‘아우어 포켓(OUR POCKETS)’ 등을 비롯해 빈티지 멀티숍 브랜드 ‘브이콥(V COB)’ 등의 팝업 스토어가 들어섰다. 젠지 세대를 타깃으로 하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의상과 액세서리, 아트 페어를 방불케 하는 디스플레이가 흥미롭다.

복합문화공간의 이름 ‘ZZ on’은 조선희의 Z,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 Z를 합한 것이다. ‘꺾였지만, 꺾이지 않고 언제나 켜져 있는(on)’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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