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꽃무릇의 슬픈 사랑

2025-10-22

이영옥, 수필가

시월의 산사는 온통 연붉은 다홍빛이다. 고창 도솔산 선운사에 꽃무릇이 흐드러졌다. 경건해야 할 사찰이건만, 붉은 꽃밭에 서니 마음이 설렌다. 대웅전을 향해 도솔천川을 따라 걷자니, 잔잔한 수면 위로 꽃무릇이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물 위의 꽃밭과 물속의 꽃밭, 어느 것이 실경實景 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꽃말처럼 이 꽃에 담긴 사연이 애틋하다. 어느 산사의 스님이 기도하러 온 여인을 흠모했다. 여인도 스님을 사모했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스님은 번뇌와 괴로움 속에 세상을 떠났고, 그가 묻힌 자리에서 붉은 꽃이 피었다. 그런데 꽃이 필 때는 잎이 없고, 잎이 날 때는 꽃이 없다. 맺어질 수 없었던 이들을 닮은 이 꽃을 사람들은 꽃무릇이라 불렀다.

꽃을 바라보자니 궁금증이 일었다. 사찰에서, 음기로 치부되는 붉은 꽃을 키웠다니? 스님께 알아보니 절실한 까닭이 있었다. 꽃무릇 알뿌리에는 독성이 있지만 구황작물이 되었다. 먹을 것이 귀할 때 뿌리의 독성을 빼내고 죽처럼 쑤어 먹었다. 또한 그 독성을 이용해 나무기둥이나 마루에 발라 해충과 부패를 막았다고 한다. 꽃무릇은 관상용이 아닌 생필품이었던 것이다.

마당에 들어서니 대웅전 지붕의 청기와가 눈길을 끈다. 선운사가 조선의 왕실사찰이었음을 보여주는 표식이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했다. 밤중에는 선사가 곁에 있어도 모를 만큼 얼굴이 검었다고 한다. 그가 남방에서 온 외래인이었음을 특징으로 말하는 듯하다. 선사는 당시 서해안 일대에 많았던 도적떼를 불법佛法으로 교화했고, 바닷가에서 소금을 구워 생업으로 삼게 했다. 먹고 살 길을 마련해준 선사에게 보답하고자, 이곳 백성들은 소금을 ‘보은염’이라 이름 붙여 선운사에 공납했다고 한다. 이 풍습이 해방 전까지 이어졌다고 하니, 수백 년 이어진 보은의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불전에서 예를 올리고 사찰을 둘러보았다. 대웅전 좌우로 청룡과 황룡이 그려진 관음전과 봉황이 조각된 영산전이 정연하고, 맞은편 만세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맞바람에 고된 몸을 풀어 놓는다. 세상을 품은 듯 넉넉해 보이는 사찰 뒤로는, 짙푸른 동백나무가 가람을 감싸고 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선운사가 미륵보살이 산다는 수미산 도솔천天의 가람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경내를 벗어나 도개교를 건너자, 햇살 머금은 초록 차밭이 정갈하다. 추로차秋露茶의 감칠맛을 되새기며 찻잎을 살피다가 깜짝 놀랐다. 올해 피는 꽃 몽우리와 지난해 맺힌 열매가 한 가지에 함께 매달려있다. 잠시 망연했다. 꽃과 열매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차나무 곁에, 열매는커녕 꽃과 잎조차 영영 만날 수 없는 꽃무릇이 나란히 있기 때문이다. 영원을 함께 하는 차나무와 영원히 비켜서야 하는 꽃나무, 이 아이러니한 풍경에 꽃무릇의 슬픈 꽃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슬퍼서 더욱 고운 꽃길을 따라 가람을 나섰다. 부처님보다 꽃구경에 마음을 빼앗긴 선운사 순례였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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