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가 없는 사람

2025-02-02

“거 아주 경우가 없는 사람이여. 상종을 말어.” 농장 뒤편 아저씨의 느닷없는 말씀이다. 바른 말씀 잘하시는 아저씨는 방금 지나친 김씨를 가리켰다. “저놈이 몸 아픈 즈그 어매 모시기 싫어 요양원 델따놓고는 생전 가보도 않고…”로 시작해 마을 일에 협조 안 해 애먹었던 일, 자녀들이 속 썩여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욕먹던 일, 핥아놓은 개밥 그릇 같은 얼굴로 아줌마들깨나 꼬셨던 일까지 이어졌다. 어르신의 장광설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 지금도 차가 마주쳤는데 나보고 후진하라고 버팅기는겨. 지는 조금만 뒤로 가면 비켜설 데가 있고 나는 쩌어그 감밭 위에꺼정 빠꾸로 올라가야 허는디. 이건 경우가 아니잖어. 안 그런가?” 아저씨가 앞자락을 깔았던 건 단지 양보 문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와 살아온 내력을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골에 내려와 자주 듣는 단어 중 하나가 ‘경우’다. “사람이 경우가 밝아” 하는 말씀은 최고의 칭찬이지만 “경우가 없다”라고 평가되면 지내기 힘들어진다. 사전적 의미인 ‘사리나 도리’와는 어감이 다르다. 법령 체계상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더 강력한 힘이 있다. 단호한 이 단어는 지역이나 마을의 역사와 습관, 내력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령, 마을에서 모내기 철 논에 물 대는 문제로 다툼이 일었을 때 법적으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르신들이 한쪽에 대해 “그건 경우가 아니지” 하시면 그걸로 끝난다. ‘지금까지 여기서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고, 그런 때는 이렇게 해왔으니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게 맞거늘, 법으로 따져서 우기고 싶으면 우리 마을에서 더 이상 지내기 힘들겨’ 뭐 이런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심한 경우 “못써!”라는 극한 선언이 따르기도 한다.

법에는 감정이 없다. 승패를 가려야 하기에 절차가 중요하고, 법적 잣대에 동정과 연민을 적실 수는 없다. 법은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다. 반면에, 어디에도 정리된 문헌이 없는 ‘경우’는 처벌 대상이 아닌 의도와 감정까지 염두에 두고 판단한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고 관습과 선례를 기본으로 한다. 사람의 됨됨이와 집안의 내력을 참고하기도 한다. ‘경우가 아니다’라는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과 응징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깨지고 감정적인 화를 입는다. 결국엔 ‘몹쓸 놈’으로 찍혀 소시오패스가 아니고는 버티기 힘들다.

새삼 소시오패스를 검색했다.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이렇게 정리한 의학자료가 올라와 있다.

“소시오패스는 스스로의 이익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심과 동정심, 죄책감이 없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타인을 속이고 험담하며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몹시 기만하고 무책임하게 잘못을 떠넘기기도 한다. 또한 타인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 몹시 가볍게 여기지만 타인을 해친 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행동의 원인을 사회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등 사건을 포장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의학적 설명이라기보다 특정 인물 묘사에 가까운 느낌이다. 몹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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