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엄마", 2위는 "돈"…600건 '유서' 분석했더니 드러난 민낯

2025-10-10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에는 '엄마', '아빠'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가족, 지인 등을 살해한 후 자살한 이들은 '돈'에 관한 언급도 자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인지과학과 연구팀은 최근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간 발생한 전체 자살 사망 10만2538건 중 600여 명의 유서 내용을 분석한 연구 보고서 '유서 분석을 통한 살해 후 자살의 특성 연구' 결과를 10일 공개했다. 보고서에서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 사망 416건 중 유서 작성자 209명(전체 215건 중 내용 식별 불가 등 6건 제외)과 유서를 남긴 그 외 자살 사망자 중 성향점수매칭을 통해 선별된 418명을 대상으로 유서 내용을 자연어 처리로 분석했다.

“엄마, 아빠” 가족에게 메시지…'돈'도 높은 비중 차지

분석 결과, 살해 후 자살 사망자가 남긴 유서에서는 총 7015개의 명사가 확인됐다. 이 중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엄마', '어머니', '어머님'으로 모두 합쳐 246회 사용돼 전체의 3.5%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는 '아빠', '아버지'가 149회(2.1%) 등장했다. 그 외 자살 사망자들의 유서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총 1만3673개의 명사 중 '엄마', '어머니', '어머님'이 522회로 3.8%를 기록해 가장 많았고, '아빠', '아버지'가 414회(3%)로 뒤를 이었다. 부모를 지칭하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표현에는 자살 사망자가 본인의 부모님을 향해 남긴 메시지뿐만 아니라, 유서 작성자 본인이 자녀의 입장에서 스스로를 '엄마' 또는 '아빠'로 지칭한 표현까지 모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즉, "엄마 미안해"처럼 부모에게 전하는 말도 있고, "아빠가 미안하다"처럼 자녀에게 남기는 말도 있다는 의미다.

부모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 단어를 살펴보면 두 집단 간 뚜렷한 차이가 발견됐다. 살해 후 자살 사망자의 유서에서는 '돈'이라는 단어가 117회 등장해 1.7%를 차지하며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이어 '사람'이 116회(1.7%)로 네 번째였다. 반면 그 외 자살 사망자의 유서에서는 부모 관련 표현 다음으로 '사람'(237회, 1.7%), '아들'(220회, 1.6%) 순으로 많았고, '돈'은 1.2%로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보였다.

살해 후 자살 사망자 유서에서 '돈'이 자주 언급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다는 '부채'의 의미로 사용되거나, 남은 재산이 얼마 정도라는 '재산' 관련 내용, 또는 사후 처리를 부탁하는 수단으로서 돈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살해 후 자살이 경제적 어려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3040, 경제적 부담·자녀 건강 문제 가장 큰 원인

연구팀은 또한 28개의 감정 카테고리 모델을 활용해 유서에 나타난 감정을 분류했다. 그 결과 '살해 후 자살 사망자'의 유서에서는 '분노', '흥분', '중립'과 같은 감정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더 이상은 미치겠다"는 식의 격앙된 표현이 많았던 것이다. 반면 '그 외 자살 사망자'의 유서에서는 '배려', '사랑', '슬픔', '신뢰' 같은 감정이 주로 나타났다. "정말 미안하고 사랑한다", "내가 없어도 잘 살기를"과 같은 표현이 많았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의 경우 충동적인 감정 폭발과 관련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이러한 감정 폭발이 가정 내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살해 후 자살 사건에서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감정적 폭발이 빈번히 언급됐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 사망자'만을 별도로 분석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 따른 특성도 파악했다. 먼저 자녀를 대상으로 한 살해 후 자살의 경우, 30대에서 40대 부모가 주를 이뤘다. 이들은 경제적 부담과 자녀의 건강 문제를 주된 원인으로 꼽았다. 생계 유지가 어렵거나, 자녀가 중병에 걸렸을 때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부모를 대상으로 한 경우는 50대 이상 연령층에서 주로 발생했다. 이들은 부모를 돌봐야 하는 부담과 경제적 어려움을 동시에 겪고 있었다. 장기 간병으로 인한 심리적·경제적 고통이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배우자나 애인을 살해한 후 자살하는 사례 역시 50대 이상에서 많이 발생했으며, 배우자의 부정이나 관계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역·세대 따라서도 편차…김민석 총리 “만만치 않은 숙제”

한편 자살 문제는 지역과 세대에 따라서도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인구감소지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36.3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평균인 29.1명보다 25%나 높았다. 지난해 자살률 상위 시군구 역시 모두 보건의료 환경이 열악한 인구감소지역이었다.

10대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증가 추세다. 10대 자살률은 2023년 10만 명당 7.9명에서 지난해 8.0명으로 늘었다. 지역별, 세대별 취약 계층에 대한 세심한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부는 10년 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목표 아래 지난달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참 복잡한 것 같다. 원인도 복잡하고, 해법도 복잡하고 만만치 않은 숙제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살해 후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경제적 부담과 돌봄 스트레스, 가정 내 갈등을 경감할 수 있는 정책적·경제적 지원과 심리 상담, 간병 서비스 확대, 가정 내 의사소통 기술을 다루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필요하다”며 “살해 후 자살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망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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