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랄'한 J호러(일본 공포영화).
영화 '사유리'(16일 개봉) 앞에 붙는 수식어다. 이상하고 기괴하다는 뜻의 속어인 '괴랄하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이 영화가 기존 일본 공포영화의 문법에서 상당히 어긋나 있다는 얘기다.
'사유리'는 '사다코 대 카야코'(2017)의 시라이시 고지 감독이 오시키리 렌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8월 일본 개봉 당시 제작비 7배의 수익을 거두며, 32개국에 수출되기도 했다.
영화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문을 연다.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히키코모리 딸 사유리를 위해 엄마는 체념한 표정으로 익숙한 듯 방문 앞에 음식을 가져다 놓는다. 행복했던 예전처럼 돌아가자는 엄마의 간절한 부탁에, 사유리는 흉기를 든 채 방문을 연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집에 화목해 보이는 카미키 가족이 이사 온다.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을 갖게 된 이들은 요즘 보기 드문 3대 대가족이다. 하지만 '홈 스위트 홈'의 단꿈은 오래 가지 않는다. 집안을 떠도는 원귀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가족을 한 명씩 죽이기 시작한다. 남은 사람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하루에(네기시 도시에)와 중학생 손자 노리오(미나미데 료카) 둘 뿐이다.
영적 능력이 있는 동급생 스미다(곤도 하나)의 도움으로 원귀의 존재를 알게 된 노리오는, 하루 아침에 각성한 태극권 사범 출신의 할머니 하루에와 함께 원귀에 맞서기 시작한다. 일본의 전형적인 하우스 호러 문법을 따라가던 영화는 두 생존자의 각성을 계기로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한다.
둘은 가족을 몰살한 원귀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원귀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가장 무서워한다'는 하루에의 신념 하에 밥을 많이 먹고, 태극권을 수련하고, 맥락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허무맹랑해 보이는 계획이지만, 이들의 의지는 확실하다.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진 않겠다는 것.
이같은 장르 전환의 반전은 관객에게 당혹감과 함께, 예상치 않았던 장르적 쾌감을 안겨준다. 호러 베이스에 만화 같은 B급 정서, 청춘 멜로, 코미디 등의 요소가 가미되며, 장르의 이종 교배가 일어난다. 요즘 말로 '병맛' 복합 장르다. “호러 아래 여러 장르를 잘 버무렸다”(이용철 평론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연상호 감독) 등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까지였다면 영화에 '최강 괴랄 호러'란 딱지를 붙이진 않았을 터.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후반부에 원귀를 탄생시킨 가족 내 비극을 드러내며 원귀보다 더 공포스러운 현실과의 접점을 만든다. 거침 없고 통쾌한 복수는 가족이 하나 둘 죽어나가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공권력에 대한 '저격'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백미는 절망에 빠져있는 손자의 심신을 단련시키며, 복수를 준비하는 치매 할머니 하루에의 엄청난 존재감이다. 그가 뿜어내는 긍정 에너지가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하다. "슬픔에 빠져있을 시간에 생명력을 키워야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아야 한다"는 하루에의 대사는 히키코모리, 무기력한 청년세대 문제로 침체돼 있는 일본 사회에 울리는 경종 같다.

어디 일본 뿐이겠나. '인생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건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사유리'는 강인한 정신과 건강한 육체로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라고 다독이는 성장영화로도 읽힌다.
영화를 보고 ‘갓생’(하루하루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아내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면, 이는 공포영화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지 않을까. '최강 파워 할매' 별명을 얻은 배우 네기시 도시에는 손자 역의 배우 미나미데 료카와 함께 25일 내한,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