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차세대 쇄빙연구선·친환경 컨테이너선 건조 추진
기항지 부족·흘수 제한 등 현실적 제약 존재해
[미디어펜=이용현 기자]정부가 내년도 예산에서 북극항로 개척 사업에 힘을 실고 있지만 정작 해운업계는 상업적 실익이 부족하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운항 가능한 기간이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성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해양수산부는 2026년도 예산안을 올해 본예산 6조7816억 원보다 5471억 원(8.1%) 늘어난 7조3287억 원으로 편성했다. 정부는 늘어난 예산을 할용해 주요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북극항로 개척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조선업계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신항로 개척을 추진하는 만큼 고위도 탐사와 북극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선박이 필요해서다. 현재 정부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보유하고 있지만 남극과 북극 연구를 모두 수행해야 해 연구 일수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해수부는 최근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한화오션을 선정했다. 총 톤수 1만6560톤급 규모로 아라온호의 두 배에 달하며 2029년 12월까지 건조를 마칠 계획이다.
친환경 쇄빙 컨테이너선 기술 개발을 위한 37억 원의 예산도 신규 편성됐다. 부산항을 북극항로 환적 거점으로 육성하는 동시에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와 온실가스 감축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선박을 건조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북극항로의 개척에 대해 현실적 제약이 크다는 지적이다. 기항지가 극히 제한적이고, 환적항으로서 부산항의 입지도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무르만스크, 데이아노보 등 항만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벌크·LNG·광물 등 특정 화물 전용으로 설계돼 있고 계절과 얼음 상황, 러시아의 허가 문제까지 겹쳐 실제 상업 운항에 활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정해진 노선을 왕복하며 기항지와 환적항을 경유해 수익을 내는 컨테이너선의 수익 구조와는 반대되는 조건이다.
흘수 문제도 걸림돌이다. 흘수는 배 밑바닥부터 수면까지의 깊이를 뜻하는데 통상 항로 수심보다 얕아야 운항할 수 있다. 현재 검토되는 북극항로는 북해항로(NSR), 북서항로(NWP), 북극점 횡단 항로(TPT) 세가지인데 이 가운데 실제 운항 가능한 곳은 러시아가 관리하는 NSR뿐이다.
NSR은 선박 흘수가 여름철 14m, 겨울철 9m로 제한된다. 업계는 이 조건을 감안할 때 운항 가능한 컨테이너선을 4000TEU급 이하로 본다. 이는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이 주력으로 운용 중인 1만~2만TEU급 초대형 선박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로, 운송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게다가 기항지 없이 직항해야 하는 특성상 전체 운항 비용을 고작 4000개의 컨테이너에만 나눠 부담해야 해 운임 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시베리아 내륙의 광물과 희귀 자원을 북극해 연안 항만으로 이송해 국제 운송할 수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하지만 이 역시 철광석, 석탄, 곡물 등 단일 품목을 대량 적재하는 벌크선 시장에 국한되는 얘기다.
또한 벌크선은 개인 화주의 화물을 싣고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직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적항을 경유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정부가 부산항을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환적항으로 개발한다 해도 벌크선에게는 이용가치가 적다.
북극항로에서는 쇄빙선 동원해야 한다는 점도 비용 부담을 키우는 요인다. 겨울에는 러시아 규정상 최소 두 척의 쇄빙선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사용료와 도선료, 보험료, 선박 건조비까지 고려하면 북극항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운항 시간 단축 효과만으로는 비용적 이익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쇄빙선 지원 없이 운항 가능한 기간이 제한적일뿐더러 비용을 고려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는 수준”이라며 “북극으로 가는 화물은 있어도 아시아로 돌아오는 화물이 없어 경제성이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도 비슷한 입장이다. 머스크, MSC 등 유럽 대형 선사들은 경제성과 환경 파괴 우려를 이유로 북극항로 이용을 공식적으로 거부한 바 있다.
결국 업계에서는 국내 해운사들이 현실적 제약 속에서 당장의 상업적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기술과 선박을 개발하더라도 국내 해운사들은 북극항로를 당장 수익을 내는 노선이 아닌 기술 확보와 장기 전략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 해운사 입장에서도 장기간 상업 운항을 하기에는 수익 구조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