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며 산업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2022년 K-콘텐츠 수출은 132억 4000달러를 기록하며 주력 수출품인 가전(80억 5000만 달러)과 전기차(98억 2000만 달러)를 크게 상회했다. 2013년 49억 달러에서 10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최근 5년간 방송영상산업 수출이 연평균 18.6%씩 증가하며, K-콘텐츠는 바이오헬스, 컴퓨터에 이어 한국의 3대 수출품으로 자리잡았다.
K-콘텐츠의 성장은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변화를 동반하고 있다. 특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예술성과 보편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적 사건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에 대한 글로벌 관심을 급증시켰으며, 이는 영미권과 유럽 출판사들의 한국 문학 판권 문의가 3~4배 증가하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졌다. 강지영 작가의 '심여사는 킬러'가 2억1000만원의 선인세로 영국 노프 더블데이와 계약을 체결한 것은 한국 문학의 상품성과 예술성이 동시에 인정받은 대표 사례다.
콘텐츠 산업의 성장은 연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승수효과를 보이고 있다. 관광산업의 경우, 한국관광공사의 2분기 외래관광객 조사에 따르면 한국여행 동기 중 '한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가 39.6%로 가장 높았으며, 이는 전년 대비 10%p 상승한 수치다. 실제 올해 상반기 방한 외래관광객은 770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3.8% 증가했고, 이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의 91%까지 회복한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현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60%가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으며, 이 중 90%가 시즌2 시청 의향을 보이는 등 K-콘텐츠가 서구 주류 시장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K-콘텐츠의 산업 연계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넷플릭스 코리아 예능 최초로 3주 연속 글로벌 톱 10 1위를 달성한 프로그램은 외식산업 전반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왔다. 출연 셰프들의 식당 예약이 전주 대비 148% 증가했으며, 일부 식당은 4937.5%의 폭발적 증가율을 기록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프로그램이 외식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파인다이닝' 검색량이 급증하고 조리도구 판매량이 전년 대비 최대 1339% 증가하는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K-콘텐츠의 글로벌화 과정에서 OTT 플랫폼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넷플릭스는 35개 언어 더빙 및 자막 지원, 체계적 현지화 전략을 통해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했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가이드라인' 개발을 통한 체계적 현지화 작업은 한국 콘텐츠의 문화적 맥락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글로벌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과 협력은 K-콘텐츠 진화를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체계적 제작 시스템과 한국 제작진의 창의성이 만나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현지화 노하우와 한국 콘텐츠의 독창성이 결합되며, K-콘텐츠는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협력 관계를 통해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한국 콘텐츠 산업 전반의 역량 강화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웹툰 산업의 성장은 K-콘텐츠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이다. 2022년 국내 웹툰산업 총매출은 1조8290억원으로 5년 전 대비 5배 성장했으며, 글로벌 웹툰 시장은 2030년까지 11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우리 학교는', '무빙' 등 웹툰 원작 드라마의 성공은 IP 확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웹툰의 영상화는 원천 IP로의 독자 재유입과 유료 콘텐츠 구매 확대, 원작 작가들의 수익 증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K-콘텐츠 성공은 국내 경공업 발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화장품 등 경공업 수출은 950억 86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소 K-뷰티 브랜드들의 약진이 두드러지며, 식품업계도 한류 열풍에 힘입어 과자류, 라면, 즉석밥 등의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라면은 지난달까지 누적 8억 달러를 수출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으며, CJ제일제당의 경우 미국 시장에서만 5년 만에 매출이 10배 이상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중공업이 잠시 주춤한 사이에 이를 보완하는 훌륭한 대안으로 성장하고 있다.
K-콘텐츠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 창출과 한국 콘텐츠 산업의 고도화라는 두 축의 균형이 필요하다.
첫째, 글로벌 OTT와 국내 제작 역량의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크리에이티브 가이드라인'과 같은 체계적인 현지화 시스템, 고도화된 프로젝트 관리 방식은 국내 제작 환경의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스탠다드와 한국의 창의적 제작 방식이 결합될 때, 더욱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다.
둘째, 콘텐츠의 다양성과 글로벌 시장성의 조화가 중요하다. '오징어 게임'이 보여준 것처럼, 한국 고유의 문화적 코드와 보편적 정서의 결합은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뉴욕, LA, 마드리드 등에서 성공을 거둔 오징어 게임 체험존은 한국 문화의 독창성이 글로벌 엔터테인먼트로 승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셋째, 창작자 육성과 지원에 대한 산업계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글로벌 플랫폼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활용한 인재 육성 프로그램, IP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이 요구된다. 특히 넷플릭스의 현지화 전문가 양성 사례나 웹툰 IP의 글로벌 확장 경험은 향후 인재 육성의 중요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넷째, K-콘텐츠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시급하다. 〈흑백요리사〉가 보여준 것처럼, 콘텐츠는 이제 단순한 시청 경험을 넘어 관련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는 플랫폼이 되었다. 이러한 확장성을 고려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산업 간 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다.
K-콘텐츠는 이제 단순한 문화상품을 넘어 한국 경제의 신성장 동력이자 소프트파워의 원천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와 산업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기업, 창작자가 함께하는 장기적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플랫폼 다변화, 창작자 권익 보호, 콘텐츠 다양성 확보 등 당면 과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 노력이 요구된다. K-콘텐츠가 맞이한 새로운 르네상스의 시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균형을 찾는 것이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김용희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yh.kim81@dgu.ac.kr
〈필자〉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이자 오픈루트 연구위원으로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을 보는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디어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