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면허증 없다” 尹 파면, 정치에 군 동원한 대가다 [박수찬의 軍]

2025-04-04

“국회의 권한 행사로 인한 국정 마비 상태나 부정선거 의혹은 병력을 동원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헌법에 따른 국군 통수의 의무를 위반했다”

헌법재판소가 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재판에서 만장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밝힌 두 문장은 길이는 짧지만 그 안에 군 통수권자의 권한과 문민통제 범위, 정치적 중립 문제를 모두 담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군은 정치적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문민 통제 원칙을 받아들이며 국가안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로 인한 국민적 신뢰가 조금씩 쌓이던 시점에 발생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장병들이 시민들과 대치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윤 대통령이 파면됨에 따라 정치권은 군 조직을 추스르는 한편 문민통제와 정치적 중립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해야 하는 국면을 맞게 됐다.

◆나라 위해 봉사한 군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 줬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국가와 국민, 군 조직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계엄군으로 출동한 장병들은 시민의 강한 저항을 받았다. 계엄 당시 국회에 출동했던 특전사 부대원들은 “우리가 왜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해야 하나”는 등의 자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계엄 해제 직후 군은 더욱 혼란스런 국면을 맞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모셨던 상관, 함께 훈련했던 동료가 수사기관에 소환·구속되거나 보직해임을 포함한 징계를 받았다. 국방부와 육군본부, 국군방첩사령부 등 핵심 기관과 부대들이 수장을 잃고 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는 군 조직에서 사령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역동성과 창의성, 방향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사령관의 공백은 조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직무대행이 해당 조직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는 일부 부대에선 계엄 전부터 하던 업무 정도만 진행하고, 정시 퇴근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군 조직을 형해화(형식만 있고 가치나 의미가 없음)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군 통수권자의 시대착오적 계엄령이 국가안보를 떠받치는 군을 치명적으로 흔드는 셈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도 리스크는 여전하다. 군 통수권자가 수뇌부를 통해 하달한 명령을 일선 부대장들이 의심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

계엄령 이전부터 개입했던 일부 장군들을 제외한 나머지 지휘관 중 국회 등으로 병력을 보낸 이들은 기존 작전지휘체계를 통해 명령을 받고 병력을 움직였다. 정상적인 체계에 근거했던 행위였지만, 결과적으론 위법한 것이었다.

직접 출동하지 않은 부대에서도 장병들이 계엄령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사태로 싹튼 군 통수권자 명령에 대한 의심과 의혹은 유사시 지휘관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자신이 받은 명령이 법적으로 옳은지,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맞는지 의심하다 결단이 늦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전은 전장의 모든 요소가 실시간으로 변화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잠깐의 주저함이나 의심도 전투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지휘관 의사결정이 지연된다면, F-35 스텔스기나 이지스구축함 등의 첨단 무기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는 군의 기밀 상당수가 일반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구체적인 부대명조차 공개되지 않았던 국군정보사령부는 노상원·문상호 전 사령관의 계엄 가담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노출됐다.

정보사령부는 해외 군사정보를 수집하는 군 정보기관이다. 민주화 이후 군에 대한 기밀이 서서히 해제되어 왔지만, 정보사령부는 예외였다. 부대 위치, 편제, 병력 현황 등은 특수 2급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정보사령부 예하 부대 이름과 지휘부 위치, 북파공작대(HID) 특성과 편제 등이 그대로 노출되어 버렸다. 해당 시설 주변 지역 주민들도 눈치를 챌 정도다.

계엄 이전에도 정보사령부는 군무원 군사기밀 유출 사건으로 해외에서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블랙 요원 명단을 포함한 정보사령부의 핵심 기밀이 누설됐고, 사령관과 예하 여단장 간의 하극상 논란으로 해외 공작과 사령관의 연락처가 노출되는 등의 문제를 겪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비상계엄 사태는 정보사령부 조직과 인력, 체계 등에 대한 개편의 필요성을 높인 셈이 됐다. 북한도 편제와 임무 등을 파악하게 된 비밀정보기관이 얼마나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정보사령부에 대해 해편에 준하는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치 지도자, 민군 관계 고민해야 할 때

한국에서 민군 관계는 군의 정치개입 방지와 문민 통제에 초점을 맞춰왔다.

반면 군 통수권자에 대한 리스크는 지금까지 다뤄지지 않았다. 민간 지도자인 대통령이 총을 꺼낼 시기를 정한다면, 군 수뇌부는 총을 언제 어떻게 쏠 것인지 결정한다. 안보 문제에서 군 통수권자와 수뇌부가 긴밀하게 소통하고, 권한에 대한 구분이 이뤄져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군 통수권자와 수뇌부는 많은 부분을 광범위하게 논의하며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다. 다만 최종 결정은 군 통수권자에 있으므로 민군 간의 대화는 평등하지 않은 구조다.

민간과 군 지도자의 리더십을 연구한 저서 ‘최고사령부’를 쓴 엘리엇 코언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는 이를 ‘민군 간의 불평등 대화’라고 불렀다.

문제는 불평등 대화가 지속될 경우에 발생할 위험이다. 군대의 역할이 거듭 확대되면서 군은 민간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군의 움직임과 정책 기조가 국가안보 외에도 국민 생활 안정과 복지, 경제, 교육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군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다른 민간 분야에선 큰 파장으로 커질 수 있다.

군사과학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전쟁 양상이 복잡해진 현대전을 다뤄야 하는 군 통수권자에게 또다른 차원의 부담이 더해진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가 복잡하고 광범위한 분야를 포괄하는 형태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군 통수권자나 민간 지도자들이 섣불리 군을 움직이려 할 때다. 불평등 대화 구조 속에서 군 수뇌부는 민간 지도자의 행동을 온전히 제어하기가 어렵다. 이는 파국을 초래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군을 정치적 문제 해결에 투입, 한국 사회 전체를 혼란과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로 인한 경제, 외교적 손실은 측정할 수조차 없다. 군의 특성과 영향력, 민군 관계, 문민 통제는 물론 헌법이 정한 통치구조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민간 정치 지도자는 헌법과 더불어 국방에 대한 전문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

군을 통수할 자격을 얻고 싶은 정치지도자라면, 장군들보다 더 훌륭한 장군이 되어야 한다. 국방과 군을 철저히 연구해서 안보 문제를 다루고 군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원래 직업인 것처럼 장군들을 대해야 한다.

이는 비상계엄 직후 발생할 우려가 있는 군 통수권자의 명령에 대한 일선 부대의 의구심을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전투에서 이길 줄 안다고 자부하는 장군들에게, 군 통수권자는 전쟁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전략과 정략을 제시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윈스턴 처칠이 대표적 사례다.

군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와의 관계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민군 간에 불평등 대화 구조는 불가피하지만, 불평등한 구조는 각자의 권한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양측이 동등한 상태에서 끊임없이 대화하며 상대방의 의중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군 통수권자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통수권자는 자신과 의견이 달라도 군 수뇌부의 임기와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군 내부 개혁도 필요하다. 국방부와 합참, 국군방첩사령부 통제가 온전하게 미치지 못하는 부대는 법의 테두리 안에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 특수정보(SI)를 다루는 정보사와 사이버작전사령부, 드론작전사령부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선 정보사가 전면에 등장했다.

정보사는 작전기획·정보수집·병력동원·심문 등의 기능을 모두 갖고 있다. 기능과 권한 측면에선 방첩사를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이버와 무인 기술은 전시는 물론 국민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계엄 해제가 늦었다면, 정보사와 사이버작전사령부, 드론작전사령부는 계엄사령부보다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부대는 방첩사도 SI 취급인가 등의 문제로 내부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I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본래 목적에 맞지 않는 운용을 방지하기가 어렵다. 군 지휘통제 체계의 정상화를 위한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헌법재판소의 이날 판결은 우리 사회에서 과소평가됐던 군 통수권자의 권한과 자질, 능력과 함께 군 조직에 대한 통제와 군 수뇌부와의 관계 설정 등을 고민할 계기가 됐다.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민군 관계와 군 통수권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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