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년 전 한 농가로부터 제보 전화를 받았다. 비싼 돈을 주고 산 트랙터가 제품 결함으로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제조사와 대리점 모두 불량제품 판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다. 자동차 운전면허가 없는 제보자가 농작업 외 생활 이동 수단으로 트랙터를 사용했던 것이다. 장을 보러 갈 때, 이웃집에 갈 때, 식당에 갈 때 제보자는 트랙터를 이용했다. 제조업체와 대리점에선 “일상 교통 수단으로 사용하면 주행거리·사용시간이 너무 길어져 일반적인 트랙터의 내구연한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제보자는 제품 고유의 결함을 입증하지 못했다.
몇년이나 지난 사연을 다시 떠올린 건 최근 농촌지역의 교통 소외 문제를 취재하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농촌지역에서는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유도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던 이가 “반납하라고 하면 면허 없는 사람은 농기계라도 끌고 장에 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시간당 버스 한대가 지나다닐까 말까 하는 농촌지역에선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에 꼭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이동권도 보장받을 수 없어서다.
앞으로 이 문제는 심각해지기만 할 뿐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농촌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면 지역 인구가 3000명 이하로 줄면 병원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2000명 이하로 감소하면 식당, 세탁소, 이·미용실 등이 폐업하기 시작한다. 농촌의 노인들은 앞으로 생활 필수 인프라를 이용하기 위해 더 멀리 이동해야 하는 환경에 처할 것이다. 10만∼30만원의 인센티브로 농촌 고령자의 면허를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령운전자의 조작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여론이 들끓는다. 순간 대처 능력이나 판단 능력이 떨어진 고령자들에게서 강제로 면허를 뺏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고령운전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 최소한의 사회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권리 같은 건 분노한 대중들 사이에선 가볍게 무시해도 되는 일쯤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건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라 차분한 논의다. 고령자 면허 취소와 같은 극단적인 대책이 아닌,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보급이나 장날 버스 편성 확대 같은 현실적인 대안이 시급하다. 노인을 포용하는 사회는 늙지 않는다.
김다정 전국사회부 경북 주재기자 kimdj@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