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농협 관련 취재를 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현안 중 하나는 농촌의 정부 발행 ‘상품권’ 사용처 문제다.
상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지역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의 사용처를 제한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지난해부터 들끓었다. 행정안전부가 2023년부터 지역사랑상품권 사용처를 매출 30억원 이하로 제한하며 대다수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사용이 막힌 뒤다. 올해는 정부가 온누리상품권 발행규모를 2조원대에서 5조원으로 확대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자, 그럼 농촌지역 온누리상품권의 사용처를 확대해달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상점가에서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상권이취약한 농촌에서는 쓸모가 확 떨어진다.
다행히 2년에 걸친 현장의 울림이 최근 정치권에 닿았다. 10월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다. 개정안은 농민 자주조직이 농촌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을 가맹점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했다. 신 의원은 동시에 ‘인구감소지역’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을 농민단체나 협동조합이 개설한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법(전통시장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현재 지역사랑상품권법 개정안은 행안위에 상정돼, 처리 과정을 단계적으로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온누리상품권을 다루는 ‘전통시장법’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관으로 아직 법안 상정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11월말 열릴 국무조정실 규제혁신추진단 간담회에서 농촌지역 상품권 사용 문제가 다뤄질 것이란 소식이 들린다.
국내 229개 지방자치단체 중 인구감소지역은 무려 89곳이다. 농촌마을 중 식료품을 살 만한 점포가 없는 마을이 73.5%에 달한다는 통계가 보여주듯 대부분 농촌 지자체에선 상품권을 쓰고 싶어도 마땅히 쓸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던 중국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지금 농촌 상품권 문제에 딱 들어맞는다. 지역사랑이든 온누리든 농촌에선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이들 상품권 소관부처가 늘상 앞세우는 ‘소상공인을 위해 사용처 확대는 불가하다’는 논리는 농촌 상권 소멸 위기 앞에선 명분이 없다. 농촌 상품권 문제만큼은 여야와 관련 부처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김해대 정경부 차장 hdae@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