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꽁무니만 좇다가 끝나버렸다. 이번 대선의 결말을 축약하면 그렇다.
지난 4년뿐인가. 첫 대선 당시 트럼프가 등장했을 때부터 민주당은 그랬다.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부터 탄핵도 두 번이나 시도했다. 물론 의혹을 증명하지도 못했다.불분명한 혐의로 시비만 걸다 끌어내리지도 못했다. 심지어 2020년 대선 때는 이겼는데도 백악관을 떠난 트럼프를 물고 뜯는 데만 혈안이었다.
앞장서서 판을 깐 건 주류 언론이다. 수년간 줄기차게 내뱉은 건 극우, 막말, 범죄자, 반이민, 백인 우월주의 같은 레토릭뿐이다. 급기야 ‘트럼프=히틀러’ 공식까지 꺼내 들었다. 주야장천 메신저를 공격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 사이 민주당의 정책은 실종됐다. 메시지는 ‘오바마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을 상징하는 DEI(Diversity·Equity·Inclusion)만 외쳤다. 사회 전반을 해석한 도구는 비판적 인종 이론(Critical Race Theory) 뿐이었다.
허울만 좋았다. 현실에선 뜬구름 같은 이슈였다. 민주당의 메시지는 변한 게 없는데, 민심은 변했다. 국가 부채는 역대 최고 수준이 됐고, 인플레이션은 극심해졌다. 치솟은 개스비, 장바구니 물가가 더 와 닿는 이슈가 됐다.
민주당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 평론가 클레어 맥캐스킬은 최근 MSNBC의 모닝 조(Morning Joe)에서 대선 결과를 두고 자조 섞인 푸념을 했다.
“트럼프가 우리보다 이 나라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시사 주간지 타임의 전 편집장 리차드 스텐겔은 9일 칼럼에서 “언론이 트럼프를 다루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유권자의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언론은 트럼프라는 나무 때문에 숲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지적이다. 언론이 트럼프를 다룬 게 잘못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잘못 다뤘기 때문에 잘못된 거다.
선거 전 미디어연구센터(MRC)가 600개 이상의 대선 관련 보도를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에 대한 보도 가운데 부정적인 것이 85%였다. 반면, 해리스에 대해서는 긍정적 보도가 78%로 조사됐다. 트럼프를 공정하게 다뤘다고 볼 수 있는가.
대중은 더는 주류 언론을 믿지 않는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대선 직전 실시한 조사에서 주류 언론을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1%뿐이다.
일례로 LA타임스는 선거 전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지 않기로 했다. 1880년대부터 지난 1972년까지 대선 때마다 지지 후보를 발표했던 매체다. 이후 한동안 중단했다가 지난 2008년 때 버락 오바마를 공식 지지했다. 이후 줄곧 민주당 후보만 지지해왔다.
사연은 이렇다. 논설위원들이 잇따라 사표를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유주인 패트릭 순시옹이 대선 후보의 공개 지지를 막았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편집권 침해 같지만, 오히려 공정성을 상실한 건 그들이다.
순시옹은 공개 지지 대신 각 후보의 정책, 계획, 향후 4년간 미칠 잠재적 영향을 긍정과 부정의 측면에서 모두 가감 없이 평가하자고 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내민 셈이다.
이를 거부한 건 정작 논설위원들이다. 그들이 원했던 공개 지지는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한국 언론은 더 문제다. 편향적인 미국 주류 언론 기사의 논조를 한 번 더 틀어서 베꼈다. 대선 직후 한국의 한 유명 언론사가 분노에 찬 듯한 트럼프의 얼굴을 따서 이렇게 제목을 달았다.
‘대규모 추방 본격 시동, 취임 첫날 이민자 내쫓을 것’.
불법이란 단어가 빠졌다. 상식적으로 ‘이민자’를 어떻게 내쫓나. 이러한 보도에만 경도되면 패배 원인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일 ‘선거가 트럼프 지지자에 대해 알려주는 점’이라는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이 매체는 대학 학위가 없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몰렸다고 폄하했다.
무려 7600만명 이상이 트럼프에게 표를 줬는데 자성의 목소리는 없다. 트럼프 꽁무니만 좇다가 참패할 만 했다.
장열 /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