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중도·중립이 절실한 위기의 시대

2025-02-03

“인심은 위험하고 도심은 은미(隱微)하니 오로지 마음을 가다듬고 전일(專一)하게 하여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시오. 황당무계한 말은 듣지 말고 합의되지 않은 꾀는 쓰지 마시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無稽之言勿聽, 弗詢之謀勿庸).”

중국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속 성군 순(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당부한 말이다. 『고문상서(古文尙書)』 대우모(大禹謨)에 실린 이 구절의 해석을 놓고 주희(朱熹)와 정약용 등 학자들의 논의가 분분했다. 하지만 순임금이 강조한 ‘진실로 그 중심을 잡으라’는 뜻의 ‘윤집궐중(允執厥中)’은 중심·중용·중도·중립 등 중(中)의 의미를 이야기할 때 많이 인용하는 명구다. 지금 한국사회가 처한 심각한 양극화와 비타협 분위기를 치유하는 데 이 구절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아 다시 꺼내본다.

순임금, 우임금에 ‘윤집궐중’ 당부

양극화와 정쟁 극복에 필요 덕목

유튜버 거짓 가려내는 노력 필요

환경의 영향과 습관으로 인해 발동하는 욕심에 찬 인심은 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인심을 순화하는 데에는 하늘이 내려준 천명의 도심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데 그 도심은 늘 미미하게 숨어 있어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순임금은 욕심에 찬 위험한 마음을 정(精)하게 가다듬고 한결같게 함으로써 진실로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는 윤집궐중이야말로 임금이 갖춰야 할 덕목임을 밝혀 우임금에게 당부했다.

그리고 윤집궐중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으로 “황당무계한 말은 듣지 말고 백성들과 합의하지 않은 꾀는 사용하지 말라”는 두 가지를 제시했다. 양극화와 비타협이 극심하고 황당무계한 거짓말이 난무하며, 지도자의 독단이 횡행하는 지금 한국사회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닌가.

정치에는 파당(派黨)이 없을 수 없고 정파끼리의 싸움도 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 진영 논리가 퍼지더니 이제는 그 싸움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 당하고, 구속기소 되는 지경이 됐다. 마음을 정하게 가다듬고 한결같게 하여 본연의 도심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간데없고 상대를 비방하는 온갖 거짓말이 난무한다.

특히 일부 돈벌이를 노린 극단적 유튜버들은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빠른 속도로 유포하며 극단적 진영 싸움을 더 부추기고 있다. 참다못해 거리로 나선 국민은 편을 갈라 상대 진영을 향해 “거짓말하지 말라”며 삿대질하는 형국이다. 임진왜란 직전에도 이랬을까, 을사늑약 무렵에도 이랬을까.

그런데 분노가 치밀어 상대에게 거칠게 삿대질하면서도 속이 후련하지 않고 내심은 더 불안하다. “진실로 중심을 잡으려면 황당무계한 말은 듣지 말고 합의하지 않은 꾀는 사용하지 말라”는 순임금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문제는 일부 극단적 유튜버들의 광적인 왜곡과 호도로 인해 이제는 어떤 것이 황당무계한 말이고 어떤 것이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은 잔꾀인지 구별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임금이 나라의 주인이었던 순임금 시절이야 임금이 중심을 잡아야 했지만, 민주주의 시대인 지금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진즉에 직업 싸움꾼으로 전락한 정치인들이 중심을 잡아주기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온 국민이 거리로 나서서 피 흘리는 혁명을 하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이제 거리로 나서는 일도 최대한 자제하고, 모든 국민이 한쪽 진영에 휩쓸렸던 삿된 마음에서 벗어나 원래의 순후(淳厚)했던 ‘국민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나라가 위기인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했던 사례가 많다. 어느 편에 이미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유로 올바른 중심을 저버리고 그편의 논리만 고집할 게 아니다. 하늘이 내려준 도심에 상응하는 국민적 올바름을 회복하려 노력해야 한다.

‘냉난자지(冷暖自知)’라는 말이 있다. 물의 차가움과 따뜻함은 무슨 대단한 지식이 없더라도 마셔본 사람이라면 저절로 안다는 뜻이다. 아집을 털어내고 노력하면 진실이 보인다. 유튜브가 쏟아내는 극단적 주장들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악랄한 거짓말인지 분간할 수 있다. 지금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나서서 만연하는 거짓말과 억지 주장을 배척하고 윤집궐중의 정신을 실천해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중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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