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 유럽도 매한가지

2025-11-25

새벽마다 문 앞에 놓인 택배상자는 이제 한국 소비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빠른 배송은 일상의 편리함을 주지만 그 편리함이 누군가의 밤과 건강을 대가로 유지된다는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최근 쿠팡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고와 과로 논란은 새벽배송 체계의 현실을 다시 보여주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으며, 특히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대형 쇼핑 이벤트가 다가오면 노동의 취약성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유럽과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아마존 물류센터는 쇼핑 성수기가 다가오면 주당 60시간 가까운 노동을 요구한다. 로봇과 알고리즘이 노동자의 속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며, 하루 수만보를 걸어야 하는 창고 노동자들은 만성 통증과 부상을 호소한다. 영국에서는 창고 노동자의 80% 이상이 지속적인 근골격계 통증을 경험하며, 이들의 부상 신고는 매년 늘고 있다. 작업 속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시간 초과’ 경고가 울리고, 이는 해고와 직결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속도를 맞춰야 한다.

유럽의 플랫폼 배달 시장에서는 젊고,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이러한 노동을 가장 많이 떠안는다. 최근 연구자들은 특히 미등록 이주민 배달노동자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공식 계정을 만들 수 없어 다른 이들의 계정을 빌려 일하며, 법적 보호 밖에서 위험한 노동을 감수한다. 사고가 나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장비비와 계정 사용료를 충당하기 위해 하루 12~15시간씩 일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한국에서도 외국인 배달노동자가 타인의 명의와 계정을 빌려 일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이를 둘러싼 관심과 제도적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빠른 배달’이 전 세계 시장의 기본값이 되면서 기업은 위험을 하청과 플랫폼 구조에 떠넘기고, 알고리즘은 노동자의 속도와 휴식을 철저히 통제한다. 그 결과 노동자는 점점 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소비자가 아무 때나 버튼 하나만 누르면 상품이 도착하는 세계가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블랙프라이데이와 같은 시기가 다가오면 이 구조는 더욱 가속화된다.

한국의 새벽배송 기사들은 평소의 몇배에 달하는 물량을 처리해야 하고, 유럽과 영국의 플랫폼 배달과 아마존 물류센터도 비상 체제로 운영된다. 기업은 임시 단기 인력을 급히 투입하고, 그만큼 사고와 과로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는 영국, 독일, 미국 등 20개국 이상에서 수천명의 아마존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를 벌여 더 나은 노동환경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모든 상품이 정말 다음날, 혹은 몇시간 안에 도착해야 할까?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누군가의 수면을 빼앗고 건강을 희생시켜도 괜찮은가? 한국, 영국, 유럽의 사례는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물류 시스템 전반이 속도 경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적 문제이며, 동시에 소비자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인식과 감각을 회복하지 않는 이상, 편리함의 비용은 앞으로도 계속 노동자에게만 전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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