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LG 트윈스 주장 박해민(35)은 올해 자조적인 농담을 종종 했다. 수비는 두말할 것도 없이 KBO리그 최정상급인데, 타격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을 소위 '웃픈(웃긴+서글픈)' 표현으로 승화하곤 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유독 한화 이글스전에서 여러 차례 결정적인 호수비를 했다. 지난 5월 27일 대전 경기에선 세 차례나 안타성 타구를 낚아채 실점을 막고 경기 흐름을 바꿨다. 그는 경기 후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한화 팬들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농담을 듣자 "하지만 타석에 있을 땐 LG 팬들이 내게 같은 생각을 하실 것 같다"고 받아쳐 웃음을 안겼다.
지난 22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이 끝난 뒤에도 그랬다. 박해민은 4-7로 패색이 짙던 9회초 1사 1·2루에서 극적인 동점 3점 홈런을 때려 역전극의 발판을 놓았다. 올 시즌 그가 친 홈런은 딱 2개뿐이고, 그중 하나는 힘이 아니라 '발'로 만든 인사이드더파크 홈런이었다. 그런 그가 중요한 한 방을 날리자 경기 후 '타석에 들어설 때 홈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 같다'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곧바로 "나뿐만 아니라 LG 팬들과 KIA 팬들 모두 예상 못 하셨을 것 같다"며 "사실 나는 홈런은커녕 안타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해 또 한 번 좌중을 웃게 했다.
이유가 있다. 박해민은 그 경기 전까지 7월 타율 0.184로 부진을 겪던 참이다. 특히 지난 18일 시작한 롯데 자이언츠와의 후반기 첫 3경기에서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다 마침내 때려낸 후반기 첫 안타가 이날의 천금 같은 동점 홈런이었던 거다.
그는 "후반기 들어 안타가 나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타석에서 계속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최고의 결과로 이어져 다행"이라며 "(앞서 출루한) 오지환과 신인 박관우가 끈질기게 기회를 만들어줘서 나는 숟가락만 얹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LG는 올 시즌 초반 압도적인 선두를 달렸다. 5월 이후 주춤하면서 한화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2위 싸움에서는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롯데와 KIA가 LG의 뒤를 열심히 쫓아야 하는 형국이다. 다만 이달 들어 베테랑 타자들의 타격 페이스가 전체적으로 떨어지면서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때 1위 싸움을 하던 한화와의 격차는 어느덧 5경기 안팎으로 벌어졌다.
박해민은 "내가 주장인데 잘 못 치고 있으니, 선수들에게 차마 '잘해보자'는 얘기도 못 했다. 그래도 올해는 '투고타저' 시즌이라 (수비가 강한) 우리 팀이 더 확실하게 수비해주면 빛이 날 것으로 본다"며 "이제 다들 타격감이 어느 정도 올라오는 것 같다. 공수 밸런스가 잘 맞으면, 우리도 다시 시즌 초반처럼 연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더 올라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