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도 배고프고 피곤하면 판결이 엄해진다고?

2024-10-16

사법체계에서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끼어든다. 가장 큰 무기는 데이터를 사용해 인과관계를 추론할 수 있는 통계적 연구 방법론이다. 예전에는 수학 모델에 기반한 경제 이론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학은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하고, 마치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는 것처럼 실험을 통해 경제 정책의 효과를 입증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흐름을 경제학의 ‘신뢰성 혁명’이라 칭한다. 그 덕분에 부족한 근거와 추측에 기반한 사회과학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식사 전후에 따라 형량이 달라져

판사도 인간…외국선 연구 많아

형사 미성년자 연령 낮추는 정책

범죄 줄지만 갱생은 더 힘들어져

양형기준 등에 경제학 기여 가능

공익 위해 판결자료 더 개방돼야

경제학자들은 사법체계에도 눈을 돌렸다. 사법체계가 인간의 삶과 경제적 풍요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판결문을 정량화할 수 있게 돼 연구의 발전이 가속화됐다. 미국 법대에서 재직하며 법체계를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경제학자가 이미 여럿이다. 가령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 연령 14세 기준은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사회가 더 안전하려면 범죄자 처벌이 더 강력해져야 하는가? 아니면 범죄자 교화에 집중해야 하나?” “경제적 도움이 재범률을 얼마나 감소시킬 수 있을까?” 등과 같은 질문에 경제학자들이 답하기 시작했다.

엄벌과 교화 사이, ‘호통 판사’의 고민

우리나라에서 최근 형사 미성년자 나이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찬성 측은 어린 소년의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보다 강한 처벌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강한 처벌만이 범죄 예방에 능사가 아니며, 미성년자의 인권보호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얼마 전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의 영상을 인상 깊게 봤다. 누구보다 소년범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들을 위한 학교와 축구단까지 만들어온 그의 행적에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별명 중 하나가 ‘천10호’다. 미성년자에게 가장 무거운 소위 ‘10호 처분(소년원 장기 송치)’을 자주 내린다는 이유에서다. 엄벌과 교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판사의 고뇌가 느껴졌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미시간주는 형사 성년연령 기준이 17세인데, 범법자가 만 17세보다 하루라도 어리면 미성년으로 재판을 받으나, 17세 생일이 지나면 성년 재판을 받게 된다. 성년 재판을 받으면 더 중형이 선고된다. 생일 하루 차이의 매우 비슷한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아슬아슬한 차이로 인생이 바뀌는 경우를 추적 비교하는 연구 방식을 회귀불연속 설계(Regression discontinuity design)라 한다.

〈그림1〉은 이들의 인생을 5년간 추적인 결과인데, 범죄 당시 17세를 기준으로 미래가 크게 달라진다. 성인 기소로 엄한 처벌을 받으면 중범죄가 0.48건(약 20%), 전체 범죄가 1.02건 감소하는 반면, 취업이 어려워지고 연간 수입이 약 90만원(674달러, 21% 감소) 줄어든다. 성년 재판으로 감옥에 더 가뒀으니 단기적으로 범죄가 줄지만, 그만큼 갱생은 어려워진다(Mueller-Smith et al, 2023).

미국식 엄벌주의 효과 크지 않아

성인 법정에서도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영미법식 엄벌주의와 범죄자의 교화와 갱생을 강조하는 대륙법식 온정주의 혹은 교화주의 사이의 긴장이 있다. 국민의 법 감정은 종종 흉악범에게 보다 중형을 내려야 한다는 엄벌주의를 요구한다. “이런 패륜적인 인간에게 고작 5년이 웬 말이야?” 하면서 판사도 똑같이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식의 부적절한 주장도 눈에 띈다.

엄벌주의 국가 미국은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 세계 죄수의 25%가 미국에 수감되어 있다. 범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흑인 젊은 남성 9명 중 1명이 감옥에 있을 정도다.〈그림 2〉는 OECD의 나라별 인구 10만명당 수감자 수를 보여준다. 엄벌주의 미국의 수감률이 압도적으로 높아 도저히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미혼모가 늘고,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 범죄자가 될 확률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양형 강도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판사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더구나 사건은 판사에게 거의 무작위로 배정된다.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을지라도 얼마나 엄한 판사에게 사건이 할당됐는지에 따라 실제로 양형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판결 데이터와 국세청 데이터를 결합하면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소득 및 복지 혜택 수혜 여부를 추적 조사하는 연구가 가능하다.

미국의 보석 판사는 사실상 무작위 배정이고, 유사한 경우라도 판사마다 구속 수감 경향이 달랐다. 어떤 판사를 만나는가에 따라 구속 수감 확률이 변했고, 유죄 판결 확률도 달라졌다. 연구 결과 구속 수감은 향후 범죄 예방에 효과는 없지만, 이후 고용을 악화시키고 복지 혜택 수령자가 될 확률을 높였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엄벌주의 강화가 부적절한 일인 셈이다 (Dobbie et al, 2018).

일부 판사들은 경제학 연구 수긍 안 해

얼마 전 필자는 사법연수원 강의에서 판사의 경향 차이를 이용한 경제학 연구들을 소개했다. 어떤 판사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법적 형식주의는 판사가 사건의 사실에 법적 이유를 합리적이고 기계적이며 심사숙고하는 방식으로 적용한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판사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심리적·정치적·사회적 요인이 판결에 영향을 준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는 판사들이 하루 중 재판 시점에 따라 판결의 관대함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았다. 〈그림3〉에서 X축은 하루의 일과 시간을, Y 축은 피고에게 얼마나 관대한 판결을 했는가를 수치화했다. 판결은 아침 첫 판결에서 관대하게 시작한다. 식사 시간이 다가오며 점차 엄해진다. 점심 식사를 마치면 다시 관대해졌다가 점차 엄해진다. 저녁 식사 후에도 이러한 패턴이 반복된다. 배고프고 피곤하면 짜증이 나는 것은 판사도 마찬가지다(Danziger et al, 2011).

다른 연구는 감정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미식축구팀이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했을 때, 그 후 일주일 동안 루이지애나 주의 판결이 엄해진다. 예상치 못한 승리나 예상했던 근소한 패배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또한 루이지애나주립대학 출신이 아닌 판사의 경우는 그 영향이 작았다. 오로지 이 대학 출신 판사들의 판결이 엄해져, 양형 기간이 평균 72일 늘었다(Eren and Mocan, 2018). 그러니 형사 사건의 판결을 앞둔 피고인은 판결 전에 판사가 부부싸움 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범죄자 재활은 현금·행동치료 함께

경제학자들은 범죄자의 재활도 연구했다. 범죄자의 재활에는 경제적 도움도 필요하지만 인내심, 범죄자로서의 자의식 등의 비인지 기능의 개선도 필요하다. 이미 범죄를 저지른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 네 부류로 나눠 실험했다(Blattman et al., 2017).

첫 번째 부류는 8주간 자기 조절, 인내심, 비범죄적 정체성, 건전한 생활 방식을 촉진하기 위한 인지행동 치료를 했다. 두 번째 부류는 근로자의 석 달 평균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자립지원금으로 지급했다. 세 번째 부류는 인지행동 치료와 현금 지원을 함께 했다. 마지막 부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대조군이다.

실험결과 현금만으로 혹은 인지 치료만으로는 범죄와 폭력이 잠시 감소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효과가 사라졌다. 하지만 치료 및 현금을 모두 제공했을 때, 범죄와 폭력이 1년 이상 크게 감소했다. 현금 지원이 인지행동 치료의 장기 목표인 행동방식 개선, 자기계발 등을 돕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범죄자의 재활 프로그램 개선에 큰 시사점을 제시한다.

최근에 필자는 홍콩 과기대의 중국인 제자와 함께 의료소송이 의사들의 행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Kim and Li, 2024). 실제로 중국 의사들은 의료 과실 보험도 제한적이고 법적 책임 면제 보호도 없기에 방어적 진료 관행이 흔하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은 2014년 이후의 의료 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이 모두 공개돼 있어 연구가 가능했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연구라 조심스럽지만, 의료 소송에서 패소한 병원은 실제로 방어진료를 강화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가령 MRI 검사가 15.6%가 증가했다. 반면 검사 결과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검사 양성률은 6.6%포인트 감소했다. 입원 환자의 병원비도 5.8% 증가했다. 결국 의료 소송에서 패소한 병원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검사를 방어적으로 더 많이 했다.

사실 대한민국 자료로 이런 연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판결문 자료는 제한적으로만 공개돼 있고, 사법부 내부인이 아닌 한 활용하기 어렵다. 외국처럼 국세청, 건강보험공단 데이터 등과 결합해 법원 판결의 장기적 효과를 측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촉법소년 기준, 보호감호 처분의 적절함, 양형 적합도 등 우리 사법 당국이 경제학자들과 함께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김현철 연세대 의대·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참고문헌

Mueller-Smith, Michael G., Benjamin Pyle, and Caroline Walker. Estimating the Impact of the Age of Criminal Majority: Decomposing Multiple Treatments in a Regression Discontinuity Framework. No. w31523.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2023.

Danziger, Shai, Jonathan Levav, and Liora Avnaim-Pesso. "Extraneous factors in judicial decis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8.17 (2011): 6889-6892.

Eren, Ozkan, and Naci Mocan. "Emotional judges and unlucky juveniles." American Economic Journal: Applied Economics 10.3 (2018): 171-205.

Dobbie, Will, Jacob Goldin, and Crystal S. Yang. "The effects of pre-trial detention on conviction, future crime, and employment: Evidence from randomly assigned judges." American Economic Review 108.2 (2018): 201-240.

Blattman, Christopher, Julian C. Jamison, and Margaret Sheridan. "Reducing crime and violence: Experimental evidence from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in Liberia." American Economic Review 107.4 (2017): 1165-1206.

Hyuncheol Bryant Kim and Xiaotong Li (2024) Working Paper, Impact of Medical Litigation on Diagnostic Tests in Hospitals: Evidence from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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