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공상과학(SF)영화 ‘미키17’에서 주인공 미키는 죽는 것이 직업이다. 생로병사에서 가장 극적인 죽음을 생산을 위한 이벤트로 풀어내는 상상이 흥미롭다. 그리스·로마에서 죽음은 이승에서의 활동이 끝나고 저승으로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망자는 합당한 장례식을 통해 좋은 세상으로 간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가족이 없는 사람은 장례식을 치를 수 없었다. 그때 등장한 매장조합은 외지에서 온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도 적절한 장례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하면서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했다. 매장조합은 중세에 길드와 공제조합으로 진화했고 현대엔 생명보험회사로 발전했다.
사망을 보장하는 생명보험 상품이 19세기 처음 미국에 등장했을 때 소비자의 반응은 차가웠다. 죽음에 대한 대응이 종교에 기초한 영적 구원이 아닌 사망보험금이라는 세속적인 보상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사망보험이 불행에 빠진 유가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생명보험업은 빠르게 성장한다. 가장의 사망을 유가족 복지로 연결한 사망보험은 그 시절 혁신적인 상품이었다.
현재 우리 생명보험 산업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성장세가 약 30년간 견조했지만 2010년 이후 둔화됐다. 특히 2015년 이후 8년간 네번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2013년부터 2023년 사이의 연평균 성장률은 0.2%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보험 시장이 정체된 이유는 저출생·고령화로 보험에 가입할 대상이 감소했고 시장은 거의 포화됐기 때문이다. 가구당 보험가입률이 98%를 상회하고 1인당 보험가입률이 95%를 넘어서면서 대부분의 국민은 생명보험에 가입한 상태다. 맞벌이부부의 증가도 사망보험 가입 감소의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배우자가 있는 가구’ 중 30대에서 50대 사이 응답자의 58% 이상이 맞벌이 부부다. 이들은 대개 사망보험보다 생존 시 혜택을 주는 연금이나 건강서비스를 선호한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사망보험금을 연금이나 건강(간병)서비스로 받는 ‘사망보험금 유동화’ 방안을 확정했다. 고령화한 소비자에게 필요한 시의적절한 정책이다. 현재 종신보험(평생 보장하는 사망보험) 중 보험료를 완납한 계약건수는 약 362만건인데 그중 사망보험금을 연금이나 건강서비스에 활용하고 싶은 소비자가 대상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한 사망보험 위축은 어쩔 수 없지만 제도 혁신이 이뤄진다면 연금이나 건강서비스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사망보험금 유동화’와 같은 혁신이 더 필요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20%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해 고령층을 위한 건강·가사·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공간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노인복지법’ 개정이나 규제 완화는 뒤따르지 않고 있다. 65세 인구가 거의 30%에 달한 일본의 고령층에 대한 건강·주거 정책을 참고할 만하다. 제도의 핵심은 건강·의료서비스와 연계된 실버타운 활성화인데 그 중심에 보험회사가 있다. 일본 보험회사는 노인특화 보험을 개발하고 건강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실버타운을 설계하고 투자하며 운영한다.
고령화된 시장에서 생명보험 산업은 변신해야 산다. ‘미키17’처럼 죽음을 대상화하지만 인간의 삶을 더 따뜻하게 하는 생명보험의 혁신을 기대한다.
김헌수 순천향대 IT 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