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목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생명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의 진보는 일상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정부 조직 및 정책 거버넌스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및 혁신정책은 여러 정부 부처에 분산되어 있다. 여러 부처가 기술 분야를 나누어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을 맡아 해당 기술 발전을 담당해왔다. 예산 및 재정 권한과 R&D 기획 기능 역시 분절되어 있다.
이점에서 통합적이고 전략적인 거버넌스 모델에 대한 시도가 그동안 있었다. 1970년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될 무렵 과학기술처가 신설되고, 1980년대에는 국가과학기술심의회가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립되었다. 이 같은 기반 위에 1980년대 말 정부 R&D 예산이 처음으로 GDP 대비 1%를 넘어섰다.
1990년대에는 연구개발 투자 확대에 따라 과학기술처가 과학기술부로 승격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급 장관을 두는 정부조직개편이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을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R&D 정책을 보다 체계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거버넌스 개편이기도 했다.
이처럼 과학기술정책 거버넌스 개편은 한국에서도 변환기마다 이루어졌다. 국가가 처한 난제와 위기감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 같은 결단을 이끌어냈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또다른 전환기를 맞고 있고, 이것은 과거 어느 시점과 비교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내부적으로 파편화된 기능들이 통합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이런 국가적, 사회적 난제들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다. 각 부처가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적 이해 없이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일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미 과학기술 혁신의 속도와 규모가 기존의 행정 체계를 뛰어넘는 시점에 도달했다. 이제는 각 부처가 각기 다른 기술 분야와 역할을 다루는 구조를 넘어, 과학기술혁신을 통합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시도하고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부처의 역할과 연계 체계를 개선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국가 과학기술 혁신에 관한 상위 거버넌스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 이 거버넌스는 각 부처를 총괄하는 상위 기관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다양한 부처와 정책 협력을 위한 협의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연구개발 예산은 국가 전략적 우선순위에 맞게 통합 관리되어야 하며, 단기적 성과와 장기적 혁신을 모두 고려하는 구조로 국가 과학기술 혁신 거버넌스 하에서 통합적으로 기능되어야 하겠다.
또, 과학기술 기반 정책 결정을 위해 국가과학자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가과학자는 대통령의 과학기술 자문을 담당하고, 각 부처에는 과학자문관을 배치해 정책 결정 과정에 과학적 근거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이 체계는 국가 R&D 목표 설정과 기술 개발 방향을 조율하며, R&D 투자와 정책 간 정합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변혁을 순간을 맞아 과학기술혁신정책을 이끌 새로운 거버넌스로 맞서왔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과학기술혁신의 통합적 거버넌스에 대한 시도는 언제나 부처의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의 상위 개념으로의 거버넌스 체계를 그려내고 추진해야 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오늘 직면한 기술 혁명에 대응하고, 미래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기회를 실현시키는 기반이 될 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