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논리에 강요되는 ‘침묵’···혁신당 성비위 키웠다

2025-09-10

조국혁신당 핵심 당직자들에 의한 성 비위 사건의 파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 비위 가해자 두 사람이 징계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는 심각한데요. 일부 피해자들은 수면 장애를 겪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을 보호했어야 할 당 지도부는 지난 7일 총사퇴했고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을 받은 조국 혁신정책연구원장이 지난 9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되며 수습을 맡게 됐습니다. 피해자들은 길게는 1년 넘게 조직·진영논리 속 침묵해야 했다고 밝혔는데요. 혁신당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사건의 경과를 짚어보겠습니다.

논란이 된 사건은 성 비위 2건과 직장 내 괴롭힘 1건입니다. 성 비위 2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각각 다른 사람이고요. 이 세 사건에서 당이 징계한 가해자는 3명, 피해자는 강미정 전 대변인 등 4명입니다.

첫 성 비위 건은 혁신당 상급 당직자 A씨에 의해 지난해 7월부터 10개월간 이뤄졌습니다. 지난 4월28일 한 혁신당 당직자가 경찰에 제출한 성추행 혐의 고소장에 따르면 A씨는 ‘수차례에 걸쳐 신체적 접촉과 성희롱성 발언’을 했습니다. 조국 원장 관련 대법원 선고가 있던 지난해 12월12일 ‘노래방 회식’에서도 성 비위가 있던 것으로 알려져 당이 진상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일련의 사건은 현재 경찰에서 수사 중입니다.

두 번째 성 비위 건은 혁신당 핵심 당직자 B씨가 지난 4월 당직 지원자를 면접한다며 만난 자리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서 불거졌습니다.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지난 1월부터 경험한 2차 가해 등 총 11건의 사례에서 다수의 가해자를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혁신당은 지난 4월 이 세 사건을 접수한 직후 성 비위는 윤리위원회에, 직장 내 괴롭힘은 인사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달 최종적으로 A씨는 제명하고, B씨에 대해서는 당원권 정지 1년을 의결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 1인에 대해서는 감봉 징계를 확정했습니다.

성 비위 사건은 지난 4일 당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재점화됐습니다. 피해자이기도 한 강미정 전 대변인은 지난 4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최초 성 비위 접수 이후 외부 조사기구 설치까지 한 달 넘게 걸렸다는 점, 제대로 된 피해자 지원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비판했는데요. 그는 “고위 당직자 일부는 피해자와 조력자들을 향해 ‘당을 흔드는 것들’, ‘배은망덕한 것들’이라 조롱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속적인 2차 가해는 피해자들이 당을 떠날 각오로 폭로를 결심한 이유가 됐습니다. 피해자를 대리해 온 강미숙 혁신당 여성위원회 고문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서 “윤석열 파면 직후부터 대선을 치르고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하는 내내 피해자들은 당의 처신에 항의하면서도 행여 정국에 피해를 줄까 말을 삼키며 지옥 속에 있었다”고 침묵해야만 했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혁신당은 처음엔 가해자로 지목된 2명을 징계하는 등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지난 5월 외부기관(인권특위)을 설치해 조사를 진행했고, 조사 결과를 수용해 징계를 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의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2차 가해 발언 논란, 황현선 전 사무총장의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망언 옹호 논란이 잇달아 불거지며 여론은 악화됐습니다.

비판이 이어지자 혁신당 지도부는 결국 지난 7일 총사퇴했습니다. 황현선 전 사무총장과 이규원 전 사무부총장도 함께 직을 내려놨고요. 이후 혁신당은 지난 9일 당내 성비위 사건을 수습할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조국 원장을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조국 원장 역시 성 비위 사건에 적극 대처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강미숙 고문은 사면 전후로 조 원장에게 편지·문자를 보내 사건을 알렸다고 밝혔는데요. 조 원장의 공개적인 대응은 없었고, 강미정 전 대변인은 “그 침묵도 제가 해석해야 할 메시지”라고 간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조 원장은 사과하면서도 논란이 불거진 당시에는 비당원 신분이었기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정당 내 뿌리 깊은 조직보위논리, 진영논리가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서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피해자들 역시 조직보위 논리와 맞서야 했다는 점을 짚었고요. 최강욱 전 원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조국에 대한 방어와 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당을 넘어 진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신호”라고 지적했습니다. “당과 진영을 흔든다”는 논리에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받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강미숙 고문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서 처음엔 정국에 끼칠 영향을 우려해 공론화를 만류했다며 “(그러나) 대선이 승리로 끝난 후에는 8·15 사면이, 기대를 다 내려놓을 때는 지선(지방선거)이라는 산이 보였다. 언제가 됐든 ‘괜찮은 때’는 없었던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의 고백은 정치권에선 피해자 측에 선 사람조차 정치적 셈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설]‘2차 가해’로 번진 혁신당 성비위, 무겁게 규명·성찰하라

결국 책임 있는 정치인이나 지도부의 결단이 없다면 성 비위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정치권에서 성 비위와 2차 가해 논란이 반복되는 건 여론 질타를 받으면 그때만 사과하고 몸을 낮출 뿐 근본적 성찰과 인식 변화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는데요. 피해 회복과 예방을 위해선 정치권이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 문광호 기자 moonlit@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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