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원들과 ‘디지털농민신문’에 곧 연재할 기획 기사 ‘웰다잉, 마지막을 존엄하게’를 준비하면서 1년 전 세상을 떠난 친한 선배가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오랜 인연을 이어온 선배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마음이 무거웠다. 암 투병 중이던 선배는 삶의 마지막 길목에 서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망설였겠지만, 이번엔 머뭇거리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두려울지 알기에, 잠시만이라도 편히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어주고 싶었다.
선배는 전화로 물 많고 다디단 수박과 잘 익은 망고를 먹고 싶다고 했다. 동네 과일가게를 샅샅이 뒤져 당도가 높은 걸로 골랐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선배의 마지막 소원을 어설프게 채워주고 싶지 않았다.
수박을 한입 베어 문 선배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진짜 맛있다.” 그 미소가 아직도 선명하다. 우리는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익숙한 농담으로 서로를 다독였고,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도 나눴다. 선배는 남겨질 이들에 대한 걱정과 아쉬움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현숙, 너는 내 인생의 가장 속 깊은 친구야. 정말 사랑해.”
그 말은 오랫동안 마음을 울렸다. 누군가의 마지막 인사를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이렇게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이별은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의식 같았다. 슬픔은 컸지만 후회는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는 순간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엄마와의 이별은 달랐다. 암과 싸우던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나는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애써 외면하며 아무 일 없는 듯 일상을 흉내냈다. 결국 “사랑해요” “고마워요”라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한 채 엄마를 떠나보냈다. 그 말들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남아 있다.
두번의 이별을 통해 알게 됐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단지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남겨질 이들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준비는 아주 작은 말 한마디, 따뜻한 인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이야기하는 데 서툴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가오는 삶의 일부다. ‘웰다잉(Well-dying)’-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는 결국 어떻게 살아왔느냐와 맞닿아 있다. 연명 의료를 선택할 것인가, 가족과의 작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마지막 순간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물음은 곧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존엄한 죽음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아내다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웰다잉이자 품위 있는 마무리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작은 용기. 그것이 아름다운 이별의 시작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 기억이 후회보다는 따뜻함으로,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으로 남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작별은 특별한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마주하는 여정이 삶을 더 풍요롭고 깊이 있게 만든다. 다가올 이별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 준비는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다.
노현숙 디지털미디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