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누구나 새해에는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지난번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과거의 경험이 쌓여 조금 더 현명하게 하루하루를 개척해 나갈 수 있기를 말입니다. 여느 새해 첫날과 마찬가지로,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섰습니다. 보통은 남구 석유화학공단 해안가에서 새해 첫날의 해를 맞이하였지만, 올해는 동구 꽃바위로 향합니다. 제법 많은 사람이 미리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해가 뜬다는 시간을 기다려 사람들 옆에 섰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 주위가 붉어지더니 드디어 해가 올라옵니다.
그런데 이번의 해돋이는 예년과 다른 분위기입니다. 막 해가 바다를 밀고 올라왔음에도 ‘와’하던 익숙한 탄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성공적인 외출이었지만, 마냥 들뜨기에는 탄핵 정국이, 제주항공 참사가, 그리고 또 다른 개별적인 이유들이 마음을 누르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해를 보며 빌어봅니다.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이틀 뒤 내란 혐의로 직무 정지된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이 집행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뉴스에 귀를 기울였습니다만, 기대는 곧 실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뉴스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거인이 있었습니다. 물론 동화 속에서 말입니다(<저만 알던 거인>, 분도출판사). 그는 7년 동안 멀리 있는 친구와 함께 지내느라 집을 비웠습니다. 거인의 집 정원은 부드러운 푸른 잔디가 있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방앗간 참새처럼 거인의 정원에 들러 놀았습니다. 열두 그루의 복숭아나무에는 연분홍빛 꽃이 피고, 탐스러운 열매가 달렸습니다. 거인의 정원에서 나무와 꽃, 아이들과 새들이 어울려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인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정원 주변에 높은 돌담을 쌓고, 정원으로 들어오면 고발하겠다는 경고문을 써 붙였습니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놀이터를 잃어버렸습니다. 마을에는 마땅한 놀이터가 없었기에, 아이들은 거인의 정원 담장 밖을 빙빙 돌며 정원에서 놀던 지난 시간을 추억했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인의 정원에는 봄이 오지 않았습니다.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었지만, 여전히 거인의 정원은 겨울이었습니다. 잔디도, 풀꽃도, 복숭아나무도 싹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거인은 아름다운 새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원에서 핀 꽃과 지저귀는 새들, 정원을 뛰어다니며 나무를 타고 오르는 아이들을 보았지요.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오랜 시간 동안 담장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이 담장에 뚫린 구멍을 발견하였고, 그곳을 통해 거인의 정원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죠. 아이들이 오자 잔디와 풀, 나무들이 기뻐하며 꽃을 피웠고, 새들이 다시 정원을 찾았던 것입니다.
뒤 이야기는 예상되는 그대로입니다. ‘저만 알던 거인’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정원의 담장을 허물어버립니다. 정원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거인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세상과 이별하고 천국에 간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동화 속 이야기이니까 해피엔딩인가요? 현실과 다르기에 동화는 아름다운 것일까요? 버스 차 벽이 겹겹이 세워지고, 칼날이 달린 철조망이 둘러쳐진 공간 안은 얼어붙은 겨울입니다.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부에서 안으로 뚫린 구멍으로 들어간 봄기운만이 겨울을 밀어낼 수 있습니다. 겨울은 결코 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어서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새해엔 모두 평안하시길….
원영미 울산대학교 강사 기억과기록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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