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논설위원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릴 때 나는 로천 김대규 화백의 시화집 『섬 노래』 북콘서트에 참여하느라 제주에 있었다. 20여 년 전 육지서 돌부처를 함께 찾아다녔던 인연이 칡넝쿨처럼 이어져 그의 북콘서트 겸 팔순 산수연(傘壽宴)까지 찾게 된 것이었다. 북콘서트는 판소리, 대금산조, 살풀이, 시 낭송, 로천의 수묵이 그려진 갈옷 패션쇼까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가을밤을 감동적으로 수놓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압축하고 있는 「나를 보고」라는 시에서 쌍청재, 소요산 자재암, 미얀마 파욱센터와 쉐이민, 그리고 한라산 로천 토굴까지 이어진 삶을 노래하며 “로천 토굴을 짓고 가부좌를 틀고 보니/ 또 몰랐던 나를 만나네/ 돌아보니 내 나이가 팔순이라/ 눈물도 마르고 웃음도 힘겹다”라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정진하는 수행자였지만 미적 대상을 직관하여 형상화하는 예술가의 미묘한 흔들림 같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숨통」이라는 시에서는 “부질없는 삶을/ 놔주자 하건만// 눈먼 아쉬움이/ 숨통을 밟고 있다”라고 하여 ‘눈먼 아쉬움’이 팔순을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술을 통해 대중과 함께하고자 했던 수행자 로천의 허허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수많은 이들에게 그림과 소리를 선물하며 살아왔다. 나 역시 원효 초상 두 점에 수묵화 몇 점을 얻은 터이다. 그런데 예전에 여쭈니 포트폴리오도 만들어놓지 않으신 데다가 작품을 남길 전시 공간도 따로 장만치 않으셨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튿날은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를 걸었다. 1951년 1월에 피란을 와서 12월 부산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의 가족이 머물던 1.4평의 방에는 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내인 마사코 여사는 그때를 “소꿉장난처럼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서귀포에 도착해서 맨 처음 그린 그림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었고, 서귀포 정취에 반해 그린 그림이 「서귀포 환상」이었다. 바닷가에서 꽃게를 잡으며 아이들과 놀던 장면은 나중에 「그리운 제주도 풍경」에 담겼다. 1952년 7월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떠난 후 1956년 영양부족과 극심한 간염으로 고통을 겪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며 제주 섬의 추억을 편지에 담아 보내곤 했다. 그리고 제주 피란 당시 화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전사한 남편의 증명사진을 들고 와 초상화를 청하는 이가 있었는데, 차마 거절치 못해 제주 섬사람들의 초상화를 꽤 여러 장 남겼다.(『아름다운 이중섭』)
이번 APEC 정상 경주 선언에서 인공지능(AI) 협력 및 인구구조 변화 대응에다가 ‘문화 창조 산업’이 언급되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의 대중문화에서부터 요리에 이르기까지 K컬처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경제적 이익과 국가 이미지 제고 등 신성장 산업으로 받아들여야 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K컬처의 기반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잘 보여주듯, 한국 고유의 전통을 현대적 트렌드에 부합하는 콘텐츠와 융합한 데서 비롯된 것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로천 김대규 선생이 평생 배움을 쉬지 않았던 소리와 전통 산수화, 이중섭 선생이 고분벽화나 민화 등의 전통미술에 주목하여 새롭게 펼쳐 보인 한국적인 회화 같은 것 등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 산업이 있기 전에 창조의 원동력인 유구한 전통문화가 있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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