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계가 자체 실손보험 입원적정성 판단 기구(가칭)를 구축하고 실손보험 가입자 입원치료 필요성을 판단할 계획이다. 보험업계 및 금융당국과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 발표되면서 보험사들은 당혹스러운 기색이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주 세종대학교에서 개최된 대한신경외과의사회 추계학술대회에선 의사협회 산하에 실손보험 입원적정성 판단 기구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실손보험 가입자의 입원적정성 문제 관련 공식 채널을 의협으로 일원화하고 전문가들이 판가름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의협 밑에 △회원권익위원회 △실손보험대책위원회 △입원적정성 판단 기구로 이어지는 민원·분쟁 조정 체계가 구축된다.
학술대회에서 고도일 대한신경외과의사회장은 “의학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입원 적정성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며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등 각과 전문 학회 교수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해 이사장 명의로 회신을 주면 보험사도 이를 수용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입원 문제부터 시작하지만 이 시스템이 잘 정착되면 도수 치료 등 다른 비급여 항목 적정성 판단으로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전자신문 취재 결과 이는 보험사 및 금융당국과 협의된 바 없는 사안으로 확인된다. 오히려 보험업계에선 보험사를 제외하고 의료계만으로 구성된 조정 기구에서 입원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것이 객관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손보험은 국민 4000만명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상품이다. 국내 대표적 민간 보험상품이지만 환자의 입원적정성에 대한 분쟁과 민원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경미한 부상 환자에게도 실손보험금으로 비용을 처리할 수 있다며 입원을 권유하는 과잉진료가 대표적이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의료진 의견에 따라 입원해 치료를 받았음에도, 보험사 조사 과정에서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질병·상해로 판단돼 보험금 지급이 거절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보험사가 경제 논리에 치중해 환자의 치료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부딪혀 왔다. 입원치료 여부 등 의학적 판단은 전문가가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보험업계는 도덕적 해이가 의료쇼핑과 실손보험료 상승 등 부작용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보험사는 손해율에 따라 주기적으로 보험료를 재산정하는데, 일부 환자가 과도한 보험금을 수령할 경우 보험사 손실은 물론 전체 실손보험 손해율이 상승해 치료를 받지 않았던 소비자 보험료까지 함께 오르는 구조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나 협회 등과 소통·협의 없이 발표된 내용”이라며 “의료계에서 입원적정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 보험사가 이를 따르겠다고 동의했다는 부분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