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자랑은 남이 나서서 해줘야 빛난다

2025-09-12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한 이후, 왜 이런 작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했느냐는 자성론이 곳곳에서 들린다. 지난달 22일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2025 국제 스트리밍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국내 OTT·FAST 산업의 AI 혁신을 위한 현장 간담회’가 대표 사례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은 이날 간담회에 모인 기업 대표들에게 “케데헌을 우리가 제작할 순 없었나”라고 물었고, 기업 대표들은 “뼈 아프다”는 말로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케데헌은 K팝을 소재로 만든 외국 콘텐트일 뿐이라고 자조하는 내용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케데헌’ 왜 우리가 만들지 못했나

곳곳에서 자성론이 일고 있지만

우리가 나서기엔 겸연쩍은 작품

제2의 케데헌 만들기 나서면 안돼

냉정하게 돌아보자. 우리가 정말 케데헌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이 넷플릭스에 케데헌이 공개되기 몇 년 전이고, 당신이 콘텐트 기업의 최고경영자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 앞에 새로운 콘텐트 기획안이 놓여 있다. 읽어보니 퇴마사로 활동하는 K팝 걸그룹이 악령으로 이뤄진 보이그룹과 대결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인데, 제목에는 ‘K’가 떡하니 박혀 있다. 당신이 경영자라면 이 기획안을 읽고 “진행시켜!”라고 외칠 수 있겠는가. 그 자리에서 바로 기획안을 집어 던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리라. 아니, 이런 기획안이 만들어져 경영자 앞에 놓일 가능성조차 거의 없다고 본다. 한국인이라는 내부자 눈에는 다소 유치한 발상이니까.

나는 넷플릭스가 케데헌을 공개했을 때 꽤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지만, 제목을 보니 실소를 참기가 어려웠다. 제목 때문에 한동안 케데헌을 외면했던 나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OST와 해외 흥행 소식에 못 이긴 척 뒤늦게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기대 없이 감상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OST는 내 플레이리스트에 상단에 놓였다. 하지만 우리가 케데헌 같은 콘텐트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다. 우리에게 그럴만한 역량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이 명품 옷을 입었다고 치자. 남이 먼저 알아봐 주고 칭찬해야 폼 나지, 자기 입으로 먼저 자랑하면 없어 보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직접 나서서 다루기에 다소 겸연쩍은 우리 이야기도 있다. 케데헌은 그런 이야기였다.

우리 손으로 직접 케데헌을 만들지 못해 뼈 아프다며 진통제를 찾지 말자. 오히려 적당히 즐겨도 되는 ‘국뽕’이라고 본다. 나는 케데헌의 성공을 통해 한국이 진정한 브랜딩 단계에 다다랐음을 실감했다. 우리가 직접 이런 콘텐트를 만들었다면 과연 이런 흥행이 가능했을까. 결과물도 케데헌과 많이 달랐을 테고, 여러모로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졌을 테다. 이미 정부 주도로 세계에 한식을 알리려다가 예산만 낭비했던 사례가 있지 않은가. 스스로 자기 몸을 들어 높은 자리에 올릴 순 없다. 한류를 의식해 일본이 의욕을 가지고 추진했던 ‘쿨재팬’ 정책이 결국 별 소득 없이 끝났듯이.

케데헌을 거꾸로 보면 K콘텐트가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인다. 우리만이 다룰 수 있는 소재로 보편적인 주제를 끌어낼 수 있는 콘텐트 제작이다. 우리는 이미 이 공식을 따른 성공 사례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 영화 ‘기생충’은 빈부격차를 드러내는 한국 특유의 주거공간인 반지하라는 소재를 인간의 욕망, 불평등, 계급 갈등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확장해 전 세계에 걸쳐 공감대를 형성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역시 한국의 전통놀이와 경제적 불평등을 소재로 삼아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함과 생존 경쟁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드러내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만이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콘텐트로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매력을 느낀 세계인이 한국 문화를 소재로 콘텐트를 재생산하는 선순환. 나는 케데헌을 그 선순환의 성공적인 결과물로 봤다. 우리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흐름에 맡기자. 괜히 제2의 케데헌을 만들겠다고 숟가락 올리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고, 자화자찬은 꼴불견이다. 자랑은 남이 나서서 해줘야 진짜 자랑이 되고 빛난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자유롭게 창작할 판을 깔아주고 끈기 있게 기다리는 일이다. 거액을 투자해도 결과물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심지어 안 나올 수도 있는 게 문화 콘텐트다. 재촉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정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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