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상 책임 없는데요"... G마켓의 '동문서답'[기자수첩]

2024-10-15

소비자 피해 불보듯 뻔한데...

'부실 입점사' 내버려둔 G마켓

'관리·감독 소홀' 지적하자...

"법률상 의무·권한 없다"

대다수 플랫폼, '자율 규제' 시행

"법보다 소비자 보호 최우선"

동문서답(東問西答). 동쪽에서 묻자, 서쪽에서 답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질문한 내용과 관련 없는 엉뚱한 답을 내놓을 때 주로 쓰인다.

질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뜻을 잘못 해석한 경우라면 답변자만을 탓하긴 어렵다. 질문이 간단명료하지 않았다면 물음을 던진 쪽애 책임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화를 돋우는 동문서답이 있다. 질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일부러 딴청을 부릴 때다.

G마켓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기자는 최근 국내 '빅3' 이커머스 플랫폼 중 한 곳인 G마켓의 입점업체 관리 부실과 감독 소홀을 지적하는 한통의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입점업체에 대한 G마켓의 느슨한 관리 행태가 소비자 피해를 키운 측면이 있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소비자 A는 G마켓에서 M사가 발행 및 판매하는 외식 프랜차이즈 모바일 상품권을 구매했다. A는 가족과 함께 모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M사 상품권을 사용해 결재를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M사 발행 상품권 사용을 금지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A는 G마켓 고객센터에 환불을 요구했다. G마켓은 M사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신청을 냈으며, 법원이 그 신청을 받아들이면 순차적으로 환불이 이뤄질 것이라고 답변했다. 기업회생절차 심리에 소요되는 기일을 생각하면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환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화가 난 A는 상품권 판매처인 G마켓은 책임이 없느냐고 따졌다. 같은 사연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올렸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M사는 다양한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상품권을 발행, 이를 G마켓, 티몬, 위메프 등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판매했다. 문제는 올해 7월 발생한 '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로 이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면서 시작됐다.

M사는 상품권 판매처인 이커머스로부터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대금을 지급받고, 고객이 구입한 상품권을 사용하면 다시 소정의 수수료를 공제한 대금을 당해 가맹점(식당)에 정산·지급한다. 상품권 판매 비중이 높았던 티몬과 위메프가 판매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그 파장이 M사에게도 미쳤다. M사는 같은 달 24일, 티몬과 위메프에서 판매된 자사 발행 모바일 상품권 대부분을 임의로 사용 불가 처리했다.

G마켓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피해 확산을 우려한 일부 프랜차이즈 본사가 G마켓을 통해 판매된 M사 상품권에 대해서도 사용 금지를 통보한 것이다. 이때부터 M사 모바일 상품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됐다.

'G마켓 책임론'이 나오는 대목은 여기서부터이다. 모든 방송과 신문이 티메프 사태를 실시간으로 전하고, 정부와 국회까지 나서 긴급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G마켓은 M사의 상품권 판매를 내버려 뒀다. M사가 스스로 상품권 판매를 중단한 7월 31일까지 G마켓은 별다른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다만 며칠이라도 빠르게 대응했다면 소비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기자는 G마켓에 M사의 상품권 판매를 막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회사가 보낸 답변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티메프 사태 발생 직후 판매업체 리스크 현황을 전수 조사했다. 이를 통해 M사의 불안정한 운영 상태를 확인했으나, "판매 상품에 문제가 없다"는 M사의 유선상 입장을 들었다.

2. 오픈마켓(이커머스 플랫폼)이 입점업체의 판매 활동을 주관적 판단으로 중단시키는 것은, 중대한 불이익 조치로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불공정 거래행위에 해당,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다.

3. 오픈마켓은 입점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법원 판례도 있다.

4. M사가 상품권 판매를 중단한 직후, 소비자 보호 대책을 실행했다. M사의 기업회생 신청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오는 대로 소비자 환불 조치에 즉각 나서겠다.

답변이라기보다는 책임 회피에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온라인 플랫폼 사건 전문 변호사를 수소문해 회사 답변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자문에 응한 변호사 A는 이렇게 설명했다.

"배달업계를 비롯해 대다수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면 입점업체를 바로 제재할 수 있도록 계약서 등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 탓에, 온플법(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논의가 촉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현행법상 소비자 피해가 예상되더라도 입점업체를 강제로 제재할 법률상 근거는 없으나 대부분의 온라인 플랫폼 운영 기업은 가맹점 계약에 특약 조항을 넣어 '입법의 불비(不備))'로 인한 빈틈을 해소한다는 것이 A변호사 답변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A변호사의 설명대로 배달과 보험, 구인·구직 등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가 입법 공백 속에서도, 입점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스스로 부담하는 이른바 ‘자율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결국 입법에 앞선 상식의 문제다. 수백 혹은 수천개 이상의 입점업체를 관리하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 기업이라면, 법률을 떠나 그에 걸맞는 윤리적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의 소비자는 입점업체가 아닌, 플랫폼 운영기업의 '브랜드'를 믿고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간사는 "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자율 규제에 나서는 등 소비자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 기업이 많다"며 "플랫폼 운영사 스스로가 리더십을 발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G마켓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법률상 책임을 운운하면서 동문서답식 답변으로 일관하는 회사 측 행태가 실망스러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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