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살얼음판 리드가 이어지던 7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유격수가 평범한 땅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 다음 타석에선 포수가 투수의 변화구를 포구하지 못해 공이 옆으로 흘렀다. 순간의 방심이 동점을 허용할 수 있던 시점. 사령탑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고, 이내 유격수와 포수의 동시 교체를 지시한다. 지난 8일 사직 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벌어진 풍경이다.
올 시즌 꾸준히 상위권을 달리고 있는 롯데 김태형(58) 감독의 메시지가 강해지고 있다. 이날 김 감독은 경기 도중 센터 라인의 핵심 자원을 함께 교체하며 선수단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냈다. 4-3으로 앞선 경기 막판 유격수 전민재가 실책을 저지르고, 뒤이어 포수 유강남이 패스트볼을 범하자 둘을 벤치로 불러들였다. 지난해 11월 트레이드로 이적해 올 시즌 활약하고 있는 ‘복덩이 이적생’ 전민재와 4년 80억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대형 FA’ 유강남 모두 예외는 없었다.
지난해부터 롯데를 지휘하고 있는 김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두산 사령탑 시절 7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이끌며 선수들을 통솔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김태형표 리더십을 잘 드러내는 장면도 여럿 있다. 경기 도중 선수들을 불러 크게 호통 치는 모습은 팬들 사이에서 매번 화제가 됐다. 주전급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조용히 뒷짐을 진 채 사령탑으로부터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또, 인터뷰를 통해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도 효과적으로 활용하곤 했다.
김 감독은 롯데에서도 이러한 방법으로 선수들을 잘 다루고 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대상은 주전 안방마님 유강남. 2023년 LG 트윈스에서 롯데로 이적한 뒤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유강남은 김태형 감독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이닝이 바뀌는 사이 김 감독이 유강남을 불러 볼 배합과 블로킹, 주자 견제 등과 관련해 지시하곤 한다. 그런데 8일 두산전에선 경기 도중, 그것도 타자와의 승부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교체되고 말았다. FA 포수라도 예외 없이 철퇴가 내려질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물론 김 감독이 채찍만 꺼내드는 것은 아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는 부상자가 많은 현실을 이야기하며 “대체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 뎁스가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감독으로선 계산이 서고 있다”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또,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투수와 타자에게 미소를 보내주는 날도 과거보다 늘어나고 있다.
이날 김 감독의 불호령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7회 1사 2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막아냈지만, 8회와 9회 연속 실점하며 5-8로 졌다. 마무리 김원중이 어깨 관리 차원에서 하루 쉬면서 필승조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점이 역전패로 이어졌다.
부산=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