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부부 비판에 입장 막힌 시민 소송 판결문서 확인
‘기관 요청 있으면 출입 제한’ 추가…법원 “명백한 위법”
용산어린이정원(용산정원) 전시물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시민들을 콕 집어 출입을 가로막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출입금지 통보 당일 근거 규정을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 근거 없이 졸속으로 관련 규정을 바꿔 대통령실 눈밖에 난 시민의 공공정원 출입을 막은 것이다. 이 조치는 대통령경호처의 요청으로 이뤄졌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당시 경호처장이었다.
29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서울행정법원 판결문에는 LH 측의 무리한 출입 통제와 관련 규정 개정 과정이 속속들이 담겼다. 이 소송은 김은희 용산시민회의 대표 등이 지난해 7월 용산정원 출입을 신청했다가 ‘예약불가’ 통보를 받은 데서 시작됐다.
김 대표 측은 용산정원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주제로 한 색칠놀이가 진행된 것을 비판하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뒤 출입금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LH는 지난해 7월10일 김 대표 측 문제제기가 있자 ‘용산 반환부지 임시개방구간 관람 등에 관한 규정’에 “반환부지 관련 기관 요청이 있으면 대상자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그리고 같은 날 김모씨에게 입장 제한을 통지했다. 법원은 해당 조항에 대해 “별다른 근거도 없이 급하게 마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LH가 내부 업무처리지침을 고쳐 시민 출입을 막은 것이 법률상 근거가 없다고 봤다. ‘관련 기관 요청’이라는 요건이 불명확할 뿐만 아니라 ‘여가 휴식·자연생태 공간 등 국민이 다양한 혜택을 널리 누릴 수 있게 한다’는 용산공원법의 목적·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정 시민을 지목해 LH에 출입을 막으라고 요청한 ‘관련 기관’은 대통령경호처였다. LH 측은 재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경호처로부터 불법적 행위가 확인된 이들의 입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을 받아 규정에 따라 제한한 것’이라고 밝혔다.
LH는 재판 과정 내내 ‘관련 기관 요청을 반영했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요청 내용이나 출입금지 사유,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의 증거 제출 명령도 거부했다.
재판부는 “원고들로서는 입장 제한이 어떤 근거·이유로 이뤄졌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고, 행정구제절차로 나아가는 데 현저한 지장이 있었다”며 “입장 제한은 행정절차법을 명백히 위반한 절차적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LH 측은 재판에서 ‘출입금지는 행정처분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다. LH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 돌이킬 수 없으므로, 소송을 진행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관련 법에 따라 LH가 관리·운영 업무를 위탁받은 점, 용산정원 출입관리가 법에 근거한 공권력의 행사라는 점 등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지금까지도 김 대표 등이 출입을 금지당하고 있는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출입금지를 둘러싼 논란은 반복될 위험이 크므로 소를 제기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봤다.
법원은 LH의 출입금지 조치가 법률상 위임 없이 위법한 내부 준칙으로 기본권을 제한한 것이며, 구체적 사유를 전혀 밝히지 않아 위법하다며 “하자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