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의 성장, 넷플릭스의 국내 서비스, 코로나로 인한 미디어 생태계 변화 등 우리나라의 미디어 환경은 최근 몇 년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미디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방송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던 방송 영역은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디어 정책은 레거시 미디어인 방송에만 강력한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영향력이 확대된 통신 영역은 상대적으로 약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만큼 새로운 미디어 분야를 규제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업전략을 세우는 만큼 국내 방송시장도 새로운 발전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방송 정책은 매우 정체되어 있다. 이전까지 미디어의 새로운 기술은 TV로 귀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적인 제도 정비가 없어도 산업의 규칙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IPTV 이후 등장한 신규 서비스인 OTT는 이름에도 TV가 없으며, 기존 방송과는 전혀 다른 서비스를 하고 있어 적용할 법·정책이 부재하다. 이로 인해 불균형한 미디어 정책 환경이 조성되었고 기형적 시장이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개선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방송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산업에 대한 현실 파악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이미 미디어 소비자들은 방송을 주요하게 이용하지 않는다. 허가권과 사회적 영향력을 이유로 방송의 공공성을 강조해왔는데 정책 목적이 제대로 수행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이 반영되지 않고, 기존 정책을 유지하다 보니 방송은 새로운 사업자들과 경쟁할 수 있는 혁신적 서비스를 도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경우, 이용자들이 비용을 지불하여 콘텐츠를 소비하기 때문에 사실상 OTT와 경쟁관계임에도 비대칭적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방송이라는 이유로 경쟁 제한적 제도(요금 및 이용약관 문제, 채널 구성의 자율권 문제, 금지행위 및 방발기금 납부 문제 등)가 많아 창의적 서비스 시도가 제한적인 것이다. 만약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요금제 구성을 자유롭게 하도록 규제를 풀어주더라도 현시점에서 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사업자는 없을 것이다. 이미 이용자들은 OTT 중심 구독을 하고 있으며, 유료방송에 더 큰돈을 쓰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요금을 올리려면 새로운 서비스 혁신을 우선 시도해야 할 것이고, 가격 책정도 시장에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다. 결국 소비자에게는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이용자 복지 차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기존 경쟁 제한적 규제들을 적절히 완화하는 것은 전체 미디어 시장과 소비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방송 영역의 규제 완화는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정책적 방향성 재설정의 시작이 될 것이다. 경쟁이 촉진된 시장은 서비스 품질 향상과 콘텐츠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며, 결국 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산업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모두가 넷플릭스가 되려고 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미디어 서비스 사업자가 등장하여 소비자가 다양한 사업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시장은 매우 혼란한 시기에 놓여있다. 이미 늦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미디어 미래를 위해 과감한 제도 개편과 정책적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에서는 다양한 플랫폼과 새로운 콘텐츠가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고,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송 생태계가 조성되게 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국내 미디어 기업이 등장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규제를 통해 산업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오히려 규제 완화를 통해 다양성과 공공성을 모두 충족하는 다층적 미디어 생태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 개혁 외에도 미디어 분야의 정부 거버넌스 개선, 공공미디어 영역 확보 등 다양한 숙제가 남아있다. 이런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가 미디어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창의적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박성순 배재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sspark@pc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