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의 과학기업 비결…개발 넘어 연구에서 답 찾는다

2025-06-22

지난 6월 인민일보에 화웨이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지난 수년간의 미·중 경쟁 속 화웨이 대응과 향후 전략에 대한 생각을 공유한 그의 인터뷰 중 필자의 이목을 끄는 대목은 기초 이론 연구에 대한 그의 철학이었다. 미국과 선진국의 첨단제품이 비싼 이유는 그들이 오랜 기간 투입한 비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이런 투입을 직접 해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런 투입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기초이론 연구는 높은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어 수십 년 동안의 전략적인 인내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집중 제재의 대상이 된 화웨이의 수장은 왜 미 항공우주국(NASA)이나 고등방위계획국(DARPA) 등 임무지향형 혁신 조직의 수장과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일까.

미국 집중제재 대상 올랐지만

인공지능 반도체 개발에 성공

지난해 매출 큰 폭으로 성장

기초 원천 연구 투자도 확대

AI 생태계를 갖춰가는 화웨이

화웨이는 2019년부터 미국의 집중제재 대상에 오르며 통신장비 수출, 첨단 반도체 수입, 자사 팹리스의 위탁 생산 등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화웨이의 주력 상품이었던 스마트폰 매출은 하루아침에 급감했다. 그렇게 화웨이는 조용히 내리막길을 걷는 듯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023년 말 화웨이가 심자외선(DUV) 멀티 패터닝을 기반으로 자체 생산한 7㎚ 칩을 탑재한 메이트 60을 출시했지만, 이 역시 낮은 수율과 성능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며 숱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반도체 어센드(Ascend) 시리즈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올 1월 딥시크가 출현하면서 화웨이의 어센드 910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엔비디아 제품과 격차가 존재하지만, 최신 제품인 910C의 경우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개별 칩의 성능을 군집 단위에서 최적화를 통해 시스템 성능을 향상시켰다. 또한 화웨이는 자체적인 소프트웨어 역량을 활용해서도 하드웨어의 성능을 개선하고 있는데, 기존 딥시크의 ‘전문가 조합(Mixture of Expert)’의 방법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그룹 전문가 조합(MoGE·Mixture of Group Expert)’ 방식을 공개하며 월등히 개선된 연산 성능을 공개했다. 알리바바·바이트댄스·BYD가 각 영역에서 치고 나가면 화웨이는 뒤에서 조용히 이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화웨이의 매출은 전년 대비 22.4% 성장했다. 2021년부터 화웨이의 매출 성장 폭은 매년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기존의 캐시카우인 ICT 인프라 사업과 소비자 가전은 건재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인 에너지 사업부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또 다크호스인 스마트카 솔루션 사업부의 매출은 474.4%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화웨이가 단순히 새로운 신성장 동력을 성공적으로 육성해 낸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모든 것은 인공지능의 전후방 가치사슬을 연결하는 핵심 역량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화웨이는 인공지능에 필요한 핵심 하드웨어인 클라우드·데이터센터, GPU(그래픽처리장치)의 상용화에 성공하였고, 여기에 필요한 에너지 기술도 전 과정을 자체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스마트폰·노트북뿐 아니라, 자율주행과 스마트시티 영역까지 보유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화웨이를 직접 방문한 다수의 전문가는 모두 입을 모아 “우리가 머릿속으로 기획하던 아이디어가 화웨이에서 이미 상용화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던 이 서비스들이 훨씬 더 빠르고 싸게 그리고 우수한 성능으로 세계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나

지난해 화웨이의 R&D 총투자액은 1797억 위안(약 34조원)을 돌파했고, R&D 집중도는 20.8%를 기록했다.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화웨이가 이제는 과거에 축적한 엄청난 개발의 경험을 기반으로, 더 본격적으로 기초 원천 연구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민일보의 인터뷰에서 런정페이 회장은 지난해 화웨이 전체 R&D 예산의 30%인 600억 위안(약 11조원)이 기초 연구에 투입되었으며, 이 예산은 기초 연구의 특성을 반영해 심사 없이 집행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중국 정부는 2500억 위안(약 48조원)의 기초연구비를 투입하였고, 이를 네이처 인덱스 상위 10위 중 8개를 차지한 중국 대학들이 수행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올해 초부터 미국과 중국의 인공지능 격차가 무의미할 정도로 좁혀졌고, 앞으로 중국의 인공지능 반도체의 성장을 무시할 수 없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는 단순히 중국 내수시장에 자사의 제품을 팔기 위함이 아니다. 본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후발주자의 위협이 화웨이로부터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내부에서 오는 미래 위협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응하지 못하면 엔비디아도 언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올 초 딥시크 쇼크를 기점으로 우리 기업·정부·학계는 도대체 지난 수년간 중국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묻고 있다. 하지만 틀렸다. 지난 수년간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반문할 때다. 지금은 우리 스스로에게 누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진짜 경쟁자들인지 되묻고 철저히 공부하고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