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만? 장제원부터 송언석까지···국회의원 ‘갑질’의 역사

2025-07-17

국회 인권 실태조사, ‘인권침해 당해봤다’ 48%

헌법기관 명목 하에 의원의 ‘왕국’ 되는 의원실

“안희정 미투 때처럼 갑질 악습 끊는 계기돼야”

“자녀 라면을 끓여주라는 업무 지시를 받은 분을 봤습니다.”(조사참여자 A씨)

“보고서를 보고 바로 던질 때도 있고, 화를 낼 때도 있고.”(조사참여자 B씨)

국회 사무처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3년 3월22일부터 4월9일까지 국회 근무자 전원(5975명, 응답 9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제1차 국회 인권 실태조사(국회 실태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근무자 중 1년간 성희롱, 괴롭힘, 차별, 그 외 인권침해를 겪은 응답자가 48.4%(479명)에 달했는데요. 피해자 중 62.4%(299명)가 “알리거나 신고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습니다. 만연한 갑질에도 국회 노동자들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겁니다.

정치권에선 이번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을 계기로 국회 문화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에 의한 폭행, 성추행, 갑질이 반복되고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인데요. 과거 논란이 됐던 사례는 무엇이 있는지, 해결방안은 있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강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의 핵심은 의원실 보좌진에 대한 갑질 여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인 강 후보자는 의원 재직 시 보좌진에게 자택 쓰레기 분리수거, 비데 수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지난 9일 처음 불거졌는데요. 사실이라면 업무 외 사적인 지시를 한 셈이라 근로기준법 위반 등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실제로 보좌진 교체가 잦았고 ‘재취업 방해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강 후보자는 지난 14일 인사청문회에서 분리수거는 “(쓰레기가 아니라) 아침으로 먹으려고 가져갔다”, 비데 수리는 “국회 보좌진이 아닌 지역사무소 보좌진에게 부탁드린 것이었다”고 해명했는데요. 반박 보도가 나오면서 거짓 해명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이에 민주당보좌진협의회 역대 회장단, 여성계조차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갑질로 통칭하는 행위에는 크게 부당한 업무지시, 폭언·폭행 등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 등이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로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것은 금지됩니다. 수행비서를 저녁 먹을 때까지 무기한 대기시키거나, 사적 심부름을 시키는 것, 나랏일을 한다는 이유로 퇴근 시간 이후에도 수당 없이 업무를 지시하는 것, 모두 갑질이 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에 의한 폭행·폭언 사례로는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의 당직자 폭행이 있는데요. 2021년 비대위원장 비서실장이었던 송 위원장은 당 행사에서 자신이 앉을 자리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직자의 정강이를 차는 등 폭행했습니다. 당직자들은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송 위원장은 사과 후 탈당했다가 4개월 만에 복당했습니다. 한선교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2019년 회의에서 당직자에게 욕설·폭언을 해 사무처 노조와 갈등을 빚기도 했고요. 강기정 광주시장은 2010년 의원 시절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국회 경위를 폭행해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성폭력 의혹도 있었습니다.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15년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지난 1월 고소를 당했습니다. 당시 그는 전직 초선 의원 출신으로 부산의 한 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할 때였습니다. 그가 지난 3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경찰은 사건을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습니다. 박완주 전 민주당 의원은 2021년 보좌관을 강제추행하고 성적 발언을 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절대 권력”···공천 불이익 등 강력 조치해야

국회의원에 의한 갑질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의원이 가진 권력이 크고, 쉽게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이 꼽힙니다. 의원실은 통상 9명으로 구성되는데 개별 헌법기관 대우를 받는 의원에 대한 외부 견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일종의 ‘왕국’이 돼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의원의 권력이 세질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강해집니다. 장 전 의원의 피해자가 2022년 처음 고소를 검토했다가 포기했던 것도 ‘윤핵관’(윤석열 전 대통령 측 핵심관계자)이라 불린 장 전 의원의 “권력이 두렵다”는 이유였습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고용·해고 권한이 있는 의원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거란 염려가 피해자를 위축시킵니다.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한 조사참여자는 “불만을 토로하면 그날로부터 그만 나오는 날이 되거든요. (의원은) 절대 권력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평판 등 소문이 빠르게 전파되는 국회 문화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번 논란이 되면 향후 재고용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국회의원들의 권력엔 국민에 의해 선출됐다는 명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보좌진들 사이에선 당론 채택, 당 지도부 의결 등 권위 있는 방식으로 확실한 공천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갑질이 있을 때 신고하고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단 주장도 있고요. 이외에도 다양한 인권 사업과 프로그램 도입, 고충 처리 활성화, 국회의원의 인권 인식을 높이는 교육 시행 등도 방안으로 제기됩니다.

실태조사에서 여성, 20대와 30대, 근속 연수 3~5년과 5~10년, 의원 보좌직, 6급 이하 공무원 등의 인권침해 피해 경험 비율이 높은 것도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갑질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지난 15일 강 후보자에 대해 “(갑질 의혹) 사안의 핵심인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나 성찰은 없었다”고 지적했어요.

한 전직 보좌진은 점선면과 통화에서 “강 후보자 건은 ‘저게 별 거냐’ 싶을 정도로 (의원이) 가족 일까지 보좌진에게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안희정 전 충남지사 건으로 미투 운동의 새 장이 열린 것처럼 이번 사건도 악습을 끊는, 우리 사회가 각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이 아니더라도 수직적 위계와 권위주의 문화가 뿌리 깊은 곳이라면 갑질은 언제든 생겨날 겁니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공분할 만큼 갑질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이번 논란을 후보 개인의 책임으로만 매듭지을 것이 아니라 갑질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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