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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닮은 구체 위에 올라탄 한 쌍의 부엉이는 달빛의 잔상을 배경으로 금방이라도 하나가 될 듯 가까워지고, 짙푸른 바다에 뛰어든 잠수부는 계속 가라앉으며 마침내 손톱 달이 뜬 밤하늘에 도달한다. 보라색 커튼과 창문을 경계로 펼쳐지는 몽환적인 풍경은 꿈결 속에서 마주쳤을 법하고, 수풀 너머로 천천히 이동하는 낙타와 사람은 환상 문학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뮌헨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유진 작가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 ‘Positive Sinking’은 관객들을 작가의 잠재의식 속에 펼쳐진 초현실적 세계로 안내하려는 시도이다. 2021년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열린 첫 개인전 ‘Junction(접합)’에서 인간과 자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내러티브를 표현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도 그 연장선으로 잠재의식을 통해 창의적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작가의 작품에는 다양한 모티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일례로 창문과 커튼, 계곡, 구름 등은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구분하고 연결하는 장치다. 인간을 비롯해 고양이와 부엉이, 까마귀 등과 같은 동물도 캔버스 위 뜻밖의 공간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모호함을 더한다. 이 작가는 이들에 대해 “상황을 관찰하는 자이자 객관적 타자”라고 설명하면서도 “어떻게 해석할 지는 관객의 몫”이라고 말했다.
가장 도드라지는 모티프는 ‘물’이다. 전시 제목인 ‘Sinking(가라앉음)’에서도 드러나듯 깊은 물은 작가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실제로 작가는 “나의 작업 과정은 마치 깊은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경험과 같다”며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깊은 물 속에 홀로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감각”이라고 했다. 다만 이는 부정적인 경험이 아니다. 작가는 “독일어를 쓰는 사람들이 영어의 ‘Th’와 ‘S’ 발음을 혼동하는 점에 착안해 ‘Sinking’을 ‘Thinking(생각)’과 연결짓기 바라며 제목을 지었다”면서 “깊은 사색에 빠질 때 의식이 점점 고요해지는 느낌을 반영했고, ‘가라앉음’이 내적 평화와 창의적 자유를 찾는 과정으로 여겨지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화풍과 모호함을 극대화한 비현실적 회화는 직관적 해석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작가는 “나의 작품은 나에게도 낯선 존재”라며 자유로운 감상을 권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중요한 감성은 호기심”이라며 “각자의 그림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나는 그 이야기의 시작점을 던져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 우손갤러리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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