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인내와 실용의 외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났다. 자유무역과 개방의 상징이던 APEC은 지정학의 격랑 속에서 정상외교의 무대로 변했다. 미·중 간의 경쟁과 대화, 한·미-한·일의 조율 등 많은 의제가 경제를 넘어 안보의 언어로 번역됐다. 그 속에서 한국은 어느 편에 완전히 기댈 수도, 또 등 돌릴 수도 없는 긴장된 균형 속에 놓여 있다. 동맹의 울타리 안에서 자율을 모색해야 하는 공존의 전략을 찾는 것이 한국 외교의 당면한 과제다.
사람 연결하는 게 공존 외교의 본질…작은 단위에서 구체적 시작을
공존은 완전함 추구하는 이상이 아닌 불완전함 견디는 제도와 기술
조용한 행동, 끊임없는 대화, 인내의 정치가 지속가능한 공존 조건
신뢰 쌓는 외교 전략 필요…생존 위한 억지력은 외부에 위탁 못해

최근 그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유럽의 두 도시를 찾았다. 하나는 프랑스 교외의 작은 농가, 1950년 유럽 통합의 발상을 품은 장 모네의 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1992년 유럽연합의 탄생 문서가 서명된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흐트였다. 전쟁의 폐허와 냉전의 종식 속에서 유럽이 찾고자 했던 공존의 질서는 지금의 한국 외교에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남긴다.
장 모네의 집, 평화를 설계한 곳
파리 남서쪽 교외, 바조슈-쉬르-기욘(Bazoches-sur-Guyonne). 가늘게 내리는 빗속에 버스가 젖은 들판을 가로질렀고. 잿빛 하늘 아래 흙냄새가 짙게 번졌다. 그 정적 속에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목적지는 유럽 통합의 설계자 장 모네의 소박한 생가였다. 멀리 한국에서 온 방문객을 반기며 관장이 말했다. “이곳은 단순한 기념관이 아니라 생각이 태어난 집입니다.”
벽에는 1950년 5월 9일,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설립을 제안하는 쉬망 선언의 원문이 걸려 있었다. “유럽의 평화는 구체적 행위에서 시작된다.” 이 선언의 바탕이 된 장 모네의 발상은 원대한 이상이 아니라 냉철한 계산이었다. 전쟁의 도구였던 석탄과 철강을 공동 관리해 이익의 충돌을 제도화한 것은 유럽의 새로운 평화의 구조이자 통합의 시발점이었다. “우리는 국가를 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결합시킨다.” 그의 말은 감정이 아닌 구조의 언어였다. 선의가 아닌 제도와 집행이 오늘의 유럽을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 관장이 차를 몰며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의 연구가 장 모네의 이상과 닿기를 바랍니다.” 평화는 추상이 아니라 관계의 설계이며 공존은 제도화된 신뢰라는 사실이 다시 상기됐다.
유럽이 자신을 다시 정의한 도시
마스트리흐트는 ‘마스(Maas) 강의 도하점’이란 뜻을 지닌 도시다. 로마 제국의 전초 기지에서 시작해 벨기에·네덜란드·독일 경계에서 늘 ‘사이’의 역사를 살았던 도시였다. 냉전이 끝난 뒤, 유럽이 새로운 질서와 공동체의 약속을 찾을 때 이 도시는 자연스럽게 상징이 됐다. 1991년 12월 유럽공동체 12개국 정상들은 이곳에 모여 통화 동맹과 정치 통합, 외교·안보 정책을 두고 밤새 논쟁을 벌였다. 상이한 이해관계로 시작해 결국 절충의 끝에서 1992년 2월 7일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서명됐고, 지금 유럽연합(EU)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조약이 체결됐던 림뷔르흐 주청사 회의장에 안내를 받아 들어섰다. 회원국 국기들이 원형 테이블을 둘러섰고, 창밖으로 마스 강이 흘렀다. 한때 국경의 상징이던 강이 이제는 연결의 강이 됐다. 그 적막한 공간에 서서 다시 생각했다. 공존이란 완전함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견디는 기술이다. 마스트리흐트의 평화는 완벽한 일치가 아니라 서로 다름을 감내하며 지속시키는 힘 위에 세워졌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다시 분열과 불확실성 속에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문제, 에너지 위기 등 수많은 균열이 존재하지만, 공존의 모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은 완결된 문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돼야 할 약속이다. 한국이 그곳에서 배워야 할 것은 완벽한 통합이 아닌 불완전함을 견디는 정치적 인내다.
유럽의 결정적 오판과 교훈
그러나 유럽은 결정적인 오판을 했다. 제도가 모든 위험을 막아주고, 경제 통합은 복지국가와 병립 가능하며, 안보는 미국이 대신해 줄 것이라 믿었다. 냉전 종식 후 직접적 위협은 사라졌다고 판단했고, 러시아와의 무역이 평화를 지탱할 것이라 착각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신화를 무너뜨렸다.
공존의 가장 기본적 출발은 생존이며, 생존은 스스로를 지킬 힘에서 온다. 억지력 없는 공존은 환상이고, 선의에 기댄 공존은 위험하다. 그 냉엄한 깨달음이 유럽을 다시 공동 방위와 에너지 자립의 길로 돌려놓았다.
외교에서 감정은 순간의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원칙은 지루하지만 존속한다. 유럽 통합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감정이 아닌 제도적 설계 덕분이었다. 실제로 장 모네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워싱턴과의 신뢰 네트워크였다. 그는 유럽의 공존 실험을 미국의 전략 질서와 정교하게 연결시켰다.
변화한 세계와 공존의 조건
오늘의 한국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새로운 질서를 위한 대화의 창은 열리고 있지만, 국제 환경은 점점 더 분절화된 구도로 바뀌고 있다. 미국은 변했다. ‘트럼피즘(Trumpism)’은 일시적 현상이 미국 정치의 새로운 DNA가 되었다. 동맹의 비용은 거래적이 되고, 공공재로서의 미국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중국도 변했다. 시진핑의 꾹 다문 입술 속에는 정치적 수사로는 녹이지 못할 갈등이 숨어 있지만, 새로운 대화를 모색할 가능성도 남기고 있다. 과학기술력과 핵심 광물의 공급망은 군사력에 못지않은 무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중·러 협력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우려는 여전히 냉엄하다. 그 한편에서 서구의 분열과 쇠퇴의 틈을 타고 글로벌 사우스가 부상하고 있다. 이 변곡점에서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이들과 공존할 것인가?
공존은 철학이 아니라 행동의 양식이다. 한국이 지속가능한 공존을 설계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외교를 추진해야 한다. 갈등이 있더라도 채널을 유지해야 한다. 목표는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조건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둘째, 정치의 절제와 정책의 일관성이 요구된다. 외교를 국내 정치의 무대로 소비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성과를 과장하지 않고 조용한 성과를 축적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셋째,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 공존은 외교전략이기 전에 사회의 문화다.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하는 내부의 연습이 있어야 외부와의 협력도 가능하다.
공존은 단순한 외교의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과 지향의 문제다. 한국은 ‘변화의 수용자’에서 ‘질서의 조정자’로, 지역의 중견국에서 ‘글로벌 코리아’로 나아가야 한다. 그 길에는 실용의 전략만으로 부족하다. 원칙이 없는 실용은 기회주의로 흐른다. 그러면 한국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많은 외교 자산이 한순간에 날아갈 수 있다. 보편성과 공동선이라는 가치를 제시할 때 한국의 목소리가 국제사회에서 더 큰 신뢰를 얻는다.
흔들리는 지정학의 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목소리의 과잉이다. 상충되는 이해 구도 속에서 작은 성과를 크게 포장하거나 국내 정치용 이벤트로 외교를 소비하는 관행은 가장 경계해야 한다. 특히 북·중·러와 관계개선의 여러 시도들은 상당 부분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적합한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많다. 지금은 소리 없이 움직일 때다.
조용한 용기, 실용의 새 이름
목소리를 줄이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인내이며, 그 인내가 공존과 실용외교의 진정한 조건이다. “지금은 인내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마도 한국에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을 오랫동안 관찰해 온 한 유럽 전문가의 냉철한 지적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보다 인내다. 대화·절제·합의의 세 축이 함께 움직일 때 공존은 지속된다. 외교는 대화의 예술이지만 동시에 인내의 정치다.
과거의 한국 외교는 종종 성급했다. 빨리 보여주고 싶어했고, 상대방이 아니라 국내 정치에 보여주기 위해 움직였다. 그래서 공존의 언어가 독백처럼 들릴 때가 많았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공존의 논리는 조용한 행동, 끊임없는 대화, 그리고 실행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와 진영 간의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 ‘사람을 엮는’ 공존을 모색할 시기다. 사람의 연결이란 단위에서 바라보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훨씬 많다. 정치적 박수보다 현실의 진전을 선택할 때 안팎에서 신뢰받는 공존을 만들 수 있다.
장 모네의 농가에서 시작된 공존의 발상과 마스트리흐트의 조약으로 완성된 유럽 통합의 약속은 모두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을 말한다. 공존을 위해서는 대화를 유지하고, 절제를 지키며, 사회적 합의를 축적해야 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강한 억지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연해주가 부른다]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연해주](https://www.usjournal.kr/news/data/20251113/p1065612393303160_602_thum.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