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수,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섬엔 돌이 많다. 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팡으로 변신하면 인정의 상징으로 변한다. 팡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짐팡’, ‘물팡’, ‘디딜팡’도 있다. 네모나게 깎은 돌을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 모퉁이나 문 앞에 세워놓고 지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게 한 것이 ‘짐팡’이고, 물허벅을 내려놓기에 편하도록 돌을 세워놓은 것이 ‘물팡’이다.
또한 ‘디딜팡’도 있었다.
문밖에 마련했던 ‘짐팡’은 짐을 지고 찾아온 사람이 잠시 짐을 내려놓고 흐트러진 몸매를 가다듬고 들어오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집에 들어서는 올레 모퉁이에 세워놓았던 ‘짐팡’은 누구든지 지나가던 사람이 잠시 무거운 짐을 내리고 쉬어가기에 편하도록 했던 것을 보면 ‘짐팡’이란 것이 인정의 후한 풍습이 아니었던가.
“조드는 사름 산지물에 가도 둥근팡에 앉나”라는 제주의 속담도 있듯이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빨래터에 가서 넓적한 팡을 차지해서 빨래를 하다 “아이고 애기야 는 뽈 것도 없는 게 닯은데, 저기 저 족은 팡에 강 호라.” 라고 당찬 아지망에게 쫓겨났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물허벅을 등에서 내려놓다가 물허벅을 깨뜨리고 ‘물팡이’알맞지 않게 만들어졌다는 원망했던 일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싯적 또래들과 연못가에서 잠자리를 잡다 보면, 연못가 한 모퉁이 디딜팡에서 잘 훈련된 조랑말을 타는 것을 자주 봐왔다. 어른들께 잘 보였던 아이는 선택을 받아 조랑말을 타보는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요즈음 같으면 자가용 탄다고 할까.
이렇듯 집안에는 쉼팡이 있고, 올레에는 올레대로 쉼팡이 있고, 마을 어귀에는 쉼팡이 있어 무거운 짐을 내리고 쉬어가기에 편하도록 했던 풍습, 이는 바로 인정이 후한 풍습이었다. 삼무정신을 내세울 때 흔히 ‘정낭’이믿음과 곧음의 상징이라면 ‘짐팡’은 인정의 상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인생살이에서 어렵고 힘들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힘들고 과도한 노동과 근로로 휴식시간이 없어 과로로 쓰러지는 노동현장을 목격하면서 쉼팡의 공간자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충분한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고, 또한 생활의 활력소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
올 한 해도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이 코 앞에 두고 있다. 하는 일이 엄청 힘들고 어려웠던 것. 잠시 멈추면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또 다른 세상을 열어가는 힘을 얻는 곳이 쉼팡일 것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잉태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쉼팡아닐까.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을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절었거늘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서러운데 짐조차 지실까.
언어의 마술사라는 말이 이 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이듦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강조하는 있는 것으로 본다.
몸의 무거운 짐, 마음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긴 날숨으로 잠시 명상을 통해…. 편안해지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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