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가 된 마부의 아들

2025-11-24

가끔 가는 골목 안 이발소가 있다. 이발소의 빛바랜 하늘색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손으로 쥐어짠 흰 수건들이 빨랫줄에 펼쳐있고 어디선가 옛 가요가 흘러나온다. 대기 의자 뒷벽에는 60년대 영화 ‘빨간 마후라’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같은 벽에 조금 거리를 두고 빛바랜 흑백사진 한장이 액자 속에 있다. 개울 위 섶다리를 찍은 사진인데 볼 때마다 강원도 정선이나 영월에서 찍은 것이려니 했다.

오일장 찾아다닌 마부 아버지

천장 있는 일자리 얻으라 조언

‘복 받았다’며 웃는 이발사 아들

지난주에는 느지막이 이발소에 갔다. 가위로 머리카락 자르는 사각사각 소리가 조금 크게 들린다 싶을 때 과묵하게 보이는 이발소 최 사장님에게 말을 건넸다. “저 흑백사진은 강원도에서 찍은 것이지요?”

그는 짧은 질문에 긴 답을 했다. “아닙니다. 삼수갑산(三水甲山)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삼수갑산은 함경도 삼수군과 갑산군을 합친 이름인데 이름처럼 물 많고 산 높은 곳입니다. 저 사진 아래 희미하게 쓰인 ‘우생마사(牛生馬死)’란 한자도 보셨나요?”

아스라한 정취를 자아내는 섶다리 사진이 우생마사란 한자어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는 음악 볼륨을 조금 낮추더니 이렇게 설명했다.

“산이 많으면 물이 많고 물이 많으면 당연히 다리도 많겠지요. 그런데 옛날 다리들은 나뭇가지로 엮은 섶다리라 여름철 큰비가 오면 불안했지요. 소나 말을 끌고 섶다리를 건널 때는 누구나 조심조심했고요. 아무리 조심해도 소나 말이 개울에 빠질 때가 있는데 소는 빠지면 물살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다 하류의 얕은 곳에서 물 밖으로 걸어 나오지만, 말은 물살에 순응하지 못하고 발버둥 치다 죽고 말지요. 그래서 개울과 섶다리가 많은 삼수갑산 사람들은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의미로 우생마사란 말을 종종 썼답니다.”

최 사장님이 우생마사에 관한 설명을 해주자 어릴 적 들었던 ‘교불삼년(驕不三年),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떠올랐다. 누구든 교만하면 3년을 못 가고, 권력도 10년을 넘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교불삼년(驕不三年)이라는 표현에서 다리 교(橋)자의 나무 목(木) 변 자리에 말 마(馬) 변이 들어간 교(驕)자를 쓴 이유가 늘 궁금했는데 최 사장님의 말을 들으며 궁금증이 풀렸다. 옛사람들도 말이 섶다리를 건너는 것을 위험하게 보고 불안해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만(驕慢)에 빠진 자나 권력에 취한 자들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오늘 많이 배웠다”고 했더니 최 사장님은 오히려 “질문에 감사한다”며 이발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선친이 삼수갑산에 사시다 월남하여 충청도 강경에서 마부생활을 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삼수갑산은 이순신 장군이 무과급제 후 초임지로 3년을 근무한 곳이지요. 저희 집안은 대대로 그곳에서 말을 키우며 살았지요. 그러다 1925년 함경도를 휩쓴 을축년 대홍수 때 말들이 휩쓸려 죽자 할아버지는 가족들과 평안도 진남포로 내려오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말들이 그리우셨는지 그곳에서 마부생활을 하시다 6·25가 터지자 군산으로 피난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먼저 월남한 분의 권유로 강경에서 다시 마부 생활을 하셨지요. 그 무렵 제가 태어났고요.

아버지는 마차에 새우젓을 싣고 강경장에서 오일장이 서는 인근 마을들을 다니셨어요. 그 당시 마부들은 도소매 흥정도 했답니다. 때로는 물건을 떼어다 장에 내다 파시기도 했는데 목단이 그려진 사기요강, 나무 빨래판, 새로 나온 오렌지색 플라스틱 바가지 같은 생활필수품이었습니다. 어쩌다 마을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강경이나 논산읍내 병원으로 데려다주기도 했지요. 저도 가끔 마차를 타기도 했습니다.”

그의 회고담을 들으며 싱거운 한 마디를 보탰다. “마차 탈 때는 좋으셨겠어요.” 이 말을 들은 그가 연한 미소를 짓는 것이 이발소 앞 거울에 비쳤다. “좋았지요. 동네 애들이 부러워했어요. 하지만 한겨울에는 아버지의 해소 소리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콧물이 흘러 고드름으로 변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초승달이 오르던 어느 초저녁 말발굽에 차인 자갈들이 불꽃 일으키는 것을 신기하게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쑥 ‘너는 이담에 출세는 못 해도 천장 있는 곳에서 일해라’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말씀에 떠오른 것이 따뜻한 난롯가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이발해주던 이발사라는 직업이었습니다. 그때는 이발소에 가면 만화책도 단편소설도 볼 수 있었거든요. 어린 저에게는 말 오줌 냄새 속에서 말똥 치우는 마부보다 이발사가 멋져 보이건 당연했지요.”

“사장님은 이제 아버님 말씀대로 실내에서 일하시는군요. 더구나 지금은 마부라는 직업도 없어졌지요.” 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제가 복을 받았지요.”

그가 여든이 넘은 어르신께는 무료로 이발해드린다는 것을 안 것은 그 후로 한 참 뒤였다.

곽정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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