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데 있어진 삼성 걱정…전삼노도 '남의 일' 아니다 [박영국의 디스]

2024-10-17

파운드리 도약 요원한데 HBM조차 주도권 뺏겨

스마트폰 1위 자리 불안, 가전구독도 한 발 늦어

경영진 실책 크지만, 구성원도 '나몰라' 할 일 아냐

17일 임단협 교섭 재개…합리적 선에서 결론 내야

‘가장 쓸 데 없는 걱정이 삼성 걱정’이란 말은 한때 진리였다. 어떤 분야에서건 1등을 놓치지 않는 것으로 모자라 경쟁자가 추격할 엄두도 못 낼 ‘초격차’를 만들겠다며 끊임없이 혁신을 하는 기업이 삼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삼성을 걱정한다. 아니, 삼성이 전 국민적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워낙 국내 산업계와 주식시장 등 국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최근 삼성을 둘러싼 부정적 이슈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의 미래’라며 야심차게 육성에 나선 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는 시장 지배자 TSMC를 추격하긴커녕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고, ‘적수가 없다’던 메모리반도체조차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 대한 오판으로 국내 경쟁사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내줬다.

생성형 AI(인공지능) 열풍의 중심에 선 반도체 삼각편대가 ‘엔비디아-TSMC-SK하이닉스’이고, 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는 것은 삼성전자의 초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1위를 수성하고 있지만 애플을 ‘초격차’로 압도할 만한 혁신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의 추격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가전 사업에서는 LG전자가 구독 서비스 사업으로 대박을 치자 뒤늦게 따르며 체면을 구겼다.

더 이상 1등을 자부하기 힘들어진 삼성전자의 현실이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삼성전자의 구성원들일 것이다. 1등 삼성의 일원으로, 업계 최고 대우와 복지를 누린다는 자부심이 과거형이 됐을 때의 박탈감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삼성전자 내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가 강성화 되고, 이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는 것 역시 삼성전자의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불안한 상황에 놓일수록 그 상황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댈 곳을 찾게 마련이다.

실적 악화로 돈줄이 마른 기업들이 더 이상 근로자들에게 통 크게 지갑을 열지 못하게 됐을 때, 노조는 ‘경영진의 잘못으로 인한 실적 악화로 죄 없는 근로자들까지 피해를 봐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게 산업계의 일반적인 루틴이었다. 삼성전자 구성원들에게도 그런 소릴 대신 해줄 존재가 필요했으리라.

물론, 지금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일차적으로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등기임원으로 보수도 받지 않고 일하는 이재용 회장에게 ‘월급 받아도 좋으니 등기이사로 복귀해 책임 경영을 하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DS 부문장이 반성문을 내놓고 조직문화를 재건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경영진의 책임을 통감한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경영진을 제외한 구성원들에게 실적 악화가 ‘남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삼노의 주력을 구성하는 삼성전자 DS부문 직원들은 삼성전자의 실적이 한참 좋던 시절 초과이익성과급(OPI)으로만 연봉의 50%를 추가로 받았다. 호실적을 이끈 경영진만 수혜를 누린 게 아니란 얘기다.

실적이 악화되고,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야겠다며 사측과 맞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임금을 깎거나 동결하자면 저항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만, 인상률이 박하다든지 성과급이 적다고 ‘투쟁’을 외치는 건 지금 삼성전자의 상황에 비춰 볼 때 당위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에는 내년 초 지급 예정인 OPI를 위한 일회성 비용이 1조원 넘게 반영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전삼노는 OPI 지급 기준을 EVA(경제적 부가가치)가 아닌 영업이익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을 무시하고 전삼노의 주장대로 벌어들인 돈을 나눠먹는 데만 집중한다면 ‘삼성전자의 겨울’은 영영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풍랑을 만난 배가 암초에 부딪칠 위기에 처했을 때 선원들이 할 일은 선장의 멱살을 잡는 게 아니라 열심히 노를 젓는 것이다. 그래야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다. 17일 다시 시작되는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서 이 점을 깊이 새겨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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