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먼 산이 있다

2025-10-23

손바닥은 별들의 전쟁터다. 삼성, 갤럭시, 구글, 클라우드 등등 이 바닥의 작명은 하늘에 빚진 게 많다. 휴대전화를 통해 바깥을 보니 갈수록 점점 더 별 볼 일 없어지는 세상이다. 급기야 그제는 좀 색다른 산이 등장했다. 유튜브가 한때 장애를 일으켜 영상이 재생되지 않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에 따라 “지하철에서 유튜브가 안 돼 먼 산만 바라본다”는 사태가 속출했다는 뉴스. 그렇다고 이런 먼 산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

제법 오래전. 호남선 종착점인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입장 마감 시간에 쫓길라 서둘러 목포문학관으로 뛰었다. 발열체크를 하는 분이 어디서 오셨냐며 조금 늦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목포, 마음먹은 지 수년 만에 오늘. 이렇게 너무나 멀리 돌아오느라 그리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차범석관, 박화성관을 지나 김현관을 보았다. 각종 전시물 중에서 눈에 띄는 몇가지. 김치수에게 보낸 편지 끝에 ‘김광남’이란 본명으로 쓴 초서체 사인이 독특하다. 선생은 그림도 곧잘 그렸다. 병 매직펜으로 그린 작품은 매직 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다. 산을 보고 간단히 스케치했다는 그림도 멋지다. 등산을 무척 즐긴 선생은 나뭇가지 같은 선분 몇개만으로 먼 산을 슥삭슥삭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일중 김충현은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서예가다. 몇해 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작품세계를 일별하는 전시회가 있었다. 한눈에도 대가의 솜씨가 뚝뚝 묻어나는 글씨와 선생의 손때 묻은 자료들. 선생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뜻밖의 글 하나를 얻었다. 선생이 잠시 근무했던 경동고등학교 졸업 앨범에서 만난 한 구절이다. 한 사람의 미모는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서 결판난다고도 했는데, 저 앨범에 인생의 한 곡진함이 담기는 경우가 많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직전 교복 차림으로 집합한 3학년 2반 꽃다운 동무들의 단체 사진 옆에 어느 필경사가 철필로 쓴 이런 짤막한 냇물 같은 글씨. “고달플 때 애달플 때 먼 산 바라보는 버릇 가져라.”

먼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멀리 있지 않다. 거기로부터 멀고 그날로부터 먼 곳. 가까운 여기가 거기다. 간밤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다. 그 별똥별을 주우러 멀리에서 여기로 출발한 이 여럿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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