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기준중위소득

2025-08-24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이 발표되었다. ‘기본적 삶을 위한 안전망 강화’의 세부 내용 가운데 하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선정 기준 상향이다. 현재 생계급여는 기준중위소득의 32% 이하일 때 신청할 수 있는데, 이 생계급여의 선정 기준을 2030년까지 35%로 높여 보다 많은 이들을 제도로 포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가난한 가족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비극이 이어지고, 그때마다 복지제도는 땜질식 쇄신을 내놓는다. 1%, 2%라는 수치가 담고 있는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지금 논의에서 놓치고 있는 핵심은 무엇인가. 선정 기준 상향이 분명 필요하지만, 그 근본에는 ‘기준중위소득’ 자체에 도사린 함정을 바로잡는 일이 있다.

생계급여 현실화를 논하려면 먼저 기준중위소득 현실화가 전제돼야 한다. 기준중위소득은 국민의 소득을 일렬로 세워 중간값을 산출해 매년 결정된다. 소득, 고용, 의료, 사회서비스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의 기준이 되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생계급여 수준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그런데,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 부처 간의 정치적 협상으로 결정되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매년 ‘기준중위소득 역대 최대 인상’이라는 수사를 반복한다. 그러나 올해 결정된 2026년 기준중위소득은 오히려 2024년 통계상 중위소득보다 낮다. 매년 기준중위소득은 시민의 소득 수준과 동떨어져 훨씬 낮게 형성된다. 낮은 기준중위소득 때문에 제도에서 탈락한 ‘비수급 빈곤층’은 81만9000가구에서 113만4000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복지부는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른 중위소득과 기준중위소득 간의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고, 그래서 2020년 이 둘 사이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6년의 계획을 짰으나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경기 불황, 코로나19, 부자감세로 인한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현실화를 미루기만 했다. 이것이 바로 ‘현실적이지 못한 생계급여’의 근본 원인이다. 말라버린 수건에서는 더 이상 물을 짤 수 없는 법이다.

기획재정부와 복지부가 가난한 이들의 삶 앞에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는 사이,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이를 묵인하고 조력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는 회의 장소, 방청, 속기록조차 공개하지 않으며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된다. 이는 전 국민의 최저임금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와 대조를 이룬다. 가난한 사람에게 허락된 민주주의의 자리는 왜 이토록 좁은가.

이제 수급자와 비수급 빈곤층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기준중위소득의 현실화를 촉구하고, 생계급여를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서 보장해야 한다. 복지는 선심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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