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불황 장기화
“어차피 사진 한번 찍고 버리는데”
지갑 얇아진 소비자들 구매 꺼려
업계 “월세도 겨우 내는 상황” 토로
온실 온도 유지 등 에너지 비용 커
4년간 꽃값 두배 상승에 큰 영향
농가 “고환율 고려 땐 비싼 편 아냐”
“원래 같으면 1∼3월이 졸업이나 입학으로 바쁠 시기인데 보시다시피 조용하네요.”
20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인근에서 20년째 어머니와 함께 꽃집을 운영 중이라는 김모(여)씨가 텅 빈 가게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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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 일주일도 채 안 남은 상황이라 예전 같으면 꽃다발 가격을 묻거나 예약하려는 전화가 빗발쳐야 하지만 이날 오전 걸려온 전화는 ‘0’건이다.
김씨는 “코로나 때는 지원금이라도 나와 살얼음 수준이었다면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로는 그냥 빙산 위에 서 있는 기분”이라며 “어머니 연금으로 월세도 겨우 내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1∼3월은 원래 화훼 업계의 성수기다. 인사·입학·졸업 등 각종 행사가 몰려 있어 화분이나 꽃다발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째 최저 매출을 기록하며 성수기도 이제는 옛말이라는 한탄이 흘러나온다. 불경기 장기화로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인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소매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줄며 11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꽃은 불경기에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품목 중 하나다. 필수재가 아니라 지출 구조조정의 1차 대상이 되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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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돈을 아끼고자 조화를 사거나 꽃다발을 구매해 사진 촬영을 한 뒤 반값에 온라인 중고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올해 졸업을 앞둔 이모(25)씨는 “꽃다발 하나에 못 줘도 5만원은 줘야 하는데 너무 비싸다. 하지만 중고로 사면 반값이면 살 수 있다”며 “어차피 사진 한 번 찍고 버리는데 굳이 새것을 사기는 아깝다”고 말했다.
4년간 약 두 배 오른 꽃값은 소비자가 선뜻 지갑을 열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19일 기준 서울 양재 꽃시장 기준 장미 1단(10송이)과 튤립 1단(10송이)의 평균 단가는 각각 1만8812원, 1만269원이다. 4년 전인 2021년 2월19일의 장미(9348원)와 튤립(5758원) 평균 가격은 올해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꽃가게 업주들은 불경기 탓에 꽃 가격 상승분의 일부만 상품에 반영했고 나머지는 스스로 감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꽃값이 오른 배경에는 전기요금과 기름값 등 에너지 비용 상승이 자리한다. 화훼 농가에서 종자를 수입해 온실에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키워낸 뒤 시장에 내놓는 구조라 에너지 비용이 꽃 가격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난여름과 겨울은 유난히 지독하고 길었던 터라 에너지 비용 부담은 컸던 반면 수확은 평소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 농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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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부산 기장군에서 분화(화분에 심어진 꽃) 농장과 관련 쇼핑몰을 운영 중이라는 박성열(45)씨는 “매년 이익이 감소하는 추세다. 지난해는 전년보다 20% 줄었는데 올해도 전년보다 40% 줄었다”며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었던 탓에 비용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화훼 농가에서 쓰는 온실 난방용 등유는 최근 리터당 1150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200~300원이 올랐다. 전기요금도 1㎾당 부가세 등을 포함해 105원으로 전년 동기 68원보다 증가했다. 여기에 인건비와 고환율로 인한 수입 원자재 상승분까지 고려하면 현재의 꽃 가격은 비싼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 수입되는 저가의 꽃과 경쟁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가격을 낮춰 이전보다 마진율이 떨어졌다는 것이 농가의 설명이다.
부산 기장군에서 50년 가까이 화훼업에 종사 중이라는 이상봉(77)씨는 “4∼5년 사이에 대동면 일대 화훼 농가 60% 정도가 수익이 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며 “난방을 위해 등유보일러랑 전기보일러를 같이 쓰고, 특히 요새는 전기를 더 많이 쓰는 추세다. 화훼 농가 대상으로는 전기요금 누진세 구간을 좀 손봐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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