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건의 국가적인 이벤트가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 관세협상 타결,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굵직한 뉴스가 잇따랐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의외로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 CEO와 이재용·정의선 회장의 이른바 '깐부치킨 회동'에 쏠렸다.
국내외를 대표하는 경제계 거물들이 서민들이 즐겨 찾는 치킨을 식사 메뉴로 선택했다는 것부터 소맥으로 건배를 하면서 우정을 다짐했다는 기사까지 그들의 발언과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대중의 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깐부 회동'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이 회동은 단순한 친목 행사가 아니라 한국 인공지능(AI) 산업의 판도를 바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회동 직후, 엔비디아는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블랙웰(Blackwell)을 비롯한 최첨단 GPU 26만장을 우리나라에 공급하기로 했다.
삼성전자·현대차·SK그룹·네이버, 그리고 정부가 공동으로 확보한 GPU 중 상당수가 엔비디아의 최신형 'GB200 그레이스 블랙웰'이다. 특히, 정부가 직접 구매하는 GPU 5만장은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과 네이버, SK텔레콤, LG AI연구원, NC AI, 업스테이지가 진행하는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등에 활용될 예정이다.
'장당 수천만원에 달하는 GPU를 돈 주고 사오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인 GPU는 국방의 전략핵잠수함이나 스텔스 전투기와 유사하다. 즉, 돈보따리를 들이민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이다.
오픈AI, 구글, 아마존과 같은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제외하고 누구도 손에 넣지 못한 핵심 전략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대한민국은 AI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나라가 치열한 AI 경쟁에서 추격자(follower) 그룹에서 선두(leader) 그룹으로 도약할 성장 사다리를 확보한 셈이다.
국가 전략 자산으로서의 GPU 도입은 '세계 AI 3대 강국'으로 도약을 선언한 우리나라에 매우 중차대한 과제다. 글로벌 품귀 현상으로 인해 사고 싶어도 못사는 전략 자산을 그 누구보다 먼저 손에 넣음으로써 한국은 30만개 이상의 AI용 GPU를 확보해 세계 3위 수준의 AI 인프라를 갖추게 됐다.
AI 산업의 관점에서 이번 GPU 확보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결단에 비견된다. 당시 많은 이들은 국민의 삶이 어려운 시절, 자동차가 다닐 도로를 짓는 것이 과연 우선순위인지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역사는 당시의 결정이 나라를 살린 구국의 결단이었음을 증명했다.
1990년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이 한국을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이끈 것처럼, 이제 AI 시대에도 'AI 고속도로'라는 기반이 필요하다. 산업과 기술 변화에 앞서 사회간접자본(SOC)인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은 국가가 산업 발전을 위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정책에서 이번 GPU 26만장 확보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다만, 최첨단 AI 반도체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가 전략자산이기에 GPU가 우리 손에 실질적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등 적성국에 GPU 수출 통제를 지시하고, 미국 이외의 어떤 국가도 최첨단 AI 반도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이 문제는 우리 정부가 정교한 외교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보여준 탁월한 협상 능력이 AI 반도체 분야에서도 다시 한 번 그 역량이 발휘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국의 동맹국이며, 대한민국의 AI 발전이 미국의 이해관계와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은 AI 대전환의 핵심 인프라, 즉 'AI 고속도로'를 건설할 핵심 자원을 확보했다. 다음은 국가대표 AI 기업을 육성하고, 핵심 AI 인재를 양성해 산업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 더불어 피지컬 AI를 비롯해 제조·유통·금융·헬스케어 등 전 산업에서 AI가 실질적 경쟁력을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민·관·학·연이 지혜를 모아 'AI+X 대전환'을 실행할 때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scotthwangb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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