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한데, 딱하지만은 않은 미키

2025-03-03

일이란 묘하다. 책임감 때문이든 스트레스 때문이든 업무의 중요성 때문이든 나 한 사람 빠지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은데, 직장인으로서 다년간 학습한 바에 따르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일이다. 그렇다고 나 한 사람 빠진 자리를 누구든 언제든 완벽하고 말끔하게 대체할 수 있다고 하면, 섬뜩하다. 해보면 알지만 그렇게 잘 안 되는 것이 일이기도 하다. 대통령 같은 일만 아니라 여느 사람의 일도 말이다.

새 영화 ‘미키 17’을 이런 ‘일의 속성’에 대한 SF적 탐구로 본다면,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아주 흥미로운 주인공이다. 이 미래 세상은 벽돌만 한, 실제 벽돌처럼 생긴 장치로 그의 모든 기억을 꾸준히 저장한다. 그의 몸은 의료 장비처럼 생긴 프린터가 재활용 재료로 매번 똑같이 찍어낸다. 불로불사를 부러워하기는 이르다. 알고 보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을 포함해 그는 행성 탐사대에서 일하다 이미 16번이나 죽음을 겪었다. 없으면 안 되는 일을 해왔다고 남다른 존중을 받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유머 섞인 묘사에서 보듯, 그의 죽음과 리프린팅은 당연한 취급을 받는다. ‘익스펜더블’, 즉 ‘소모품’은 이 극한 직종을 부르는 말이다.

한데 미키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퍽 해맑은 청년이다. 친구와 동업한 마카롱 가게가 망하자 사채업자를 피하는 지구 탈출 방편으로 극한 직종에 지원했지만, 성공이든 복수든 야심이 없다. 매사 제 잇속을 챙기거나 남 탓을 하는 대신 스스로를 먼저 탓하는 편이다. 재미있는 건 ‘미키’들의 개성. 몸과 기억은 같아도 리프린팅 버전마다 성격이 다르다. 하긴 직장인도 어떤 날은 자신감이 넘치고, 어떤 날은 별일 아닌 데 풀이 죽는다. 반복되는 몰개성적인 업무라도 하는 사람의 개성과 존재를 무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7번째 미키가 업무 도중 죽는 대신 살아 돌아오고, 그 사이 리프린팅 된 18번째 미키와 동시에 존재하는 건 큰일이다. 규칙에 따르면 불멸 대신 절멸에 처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키의 캐릭터만 아니라 영화의 전개도 경쾌하다. 독재자 부부(마크 러팔로, 토니 콜레트)의 어처구니없는 이중창을 포함해서다. 이런 모든 대사가 영어인 데도 봉준호 영화를 보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설정은 달라도 전작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니 이 영화의 결말 역시 익숙한 디스토피아 SF와 다르리라는 것쯤은 예상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미키에게 참담한 비극을 안겨주는 결말이 아니라는 데 안도했다. 참혹하고 무자비한 일이라면 영화관 밖에서 너무 자주 벌어지고 있으니. 덧붙이면 디스토피아든 유토피아든 영화 속 세상을 좌우하는 건 첨단 기술이 아니다. 현실도 그럴 터. 인류의 미래도, 일의 미래도 권력과 제도를 포함해 사람이 정하는 것이라는 걸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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