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7년 전 왜구가 강탈한 우리 불상, 귀향 100일 만 다시 '눈물의 일본행', 왜?[이슈, 풀어주리]

2025-05-03

출근길에서도, 퇴근길에서도. 온·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풀어드립니다. 사실 전달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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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7년 전 왜구에 약탈당했던 우리 고려시대 금동관세음보살좌상(불상)이 고향인 충남 서산 부석사의 품에 안긴 지 100일 만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됐다. 소유권이 일본에게 있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고향에서 송별회를 마친 뒤 수백 년간 머물렀던 타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고려 말 빼앗겼던 우리 불상, ‘韓 절도단’ 의해 고향 땅

지난달 29일 서산 부석사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25일 시작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친견법회가 부처님오신날인 5일 마무리된다. 이어 10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가량 동안 불상을 떠나보내는 ‘송불의식’이 거행된 뒤, 우리 불상은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높이 50.5㎝, 무게 38.6㎏인 이 불상은 1378년 9월 왜구가 충남 천수만으로 침입했을 당시 강탈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50여 년 후인 1526년 10월 일본 쓰시마섬(대마도) 사찰 간논지(觀音寺)가 창건되면서 이 불상은 사찰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을 일컫는 주존불로 봉안됐다. 1973년에는 일본 유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서산 부석사는 불상 반환에 나섰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1996년 부석사 전 주지 도광 스님이 간논지를 직접 방문해 불상 반환을 요청했고, 2004년 서산 부남회가 불상 교류를 논의했으나 변화는 없었다.

우리 불상이 647년 만에 귀향길에 오르게 된 수단은 다름 아닌 ‘절도’였다. 2012년 10월 쓰시마섬 가이진신사(海神神社)와 간논지 2곳에서 각각 동조여래입상과 금동관세음보살좌상 도난사건이 발생했고, 절도범은 이듬해 1월 국내에서 붙잡혔다. 범인은 김씨를 포함한 한국인 4명으로, 이들은 범행 당시 두 불상을 위작이라고 속여 배편으로 국내에 들였다가 일본 측이 한국 정부에 수사를 요청하면서 검거됐다.

절도단이 검거되며 몰수된 불상 2개는 대전국립문화유산연구원 수장고에 보관됐다. 이후 동조여래입상은 국내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2015년 7월 가이진신사로 돌아갔지만,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소유권을 두고 소송에 휘말리면서 한국에 머무르게 됐다. 부석사가 불상 안 ‘1330년경 서주(瑞州·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결연문이 담겨 있는 것을 근거로 원소유자라고 밝히고 나서면서다.

7년간 이어진 불상 소유권 공방…법원 판결도 엇갈렸지만 결국

불상 도난 사건 이후 일본 측은 수차례 “불상 도난 문제는 양국의 우호를 쌓는 데 방해된다”고 지적하며 반환을 요청했다. 당시 쓰시마 시는 전체 섬 주민 3만4000여 명의 절반가량인 1만7000여 명의 서명을 확보했고, 다카라베 야스나리 시장은 불상 반환을 요청하기 위한 방한 의사를 밝히며 이 서명도 동시에 제출하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부석사 봉안협의회에서 불상 영구 반환을 요구하는 집회와 서명운동을, 충남 서산 지역사회 관계자들이 불상 제자리 찾기 운동을 펼치는 등 강경히 맞섰다.

법적 다툼은 부석사가 2016년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유체동산 인도 소송을 내면서 본격화했다.

1심과 2심의 판결은 엇갈렸다. 2017년 1월 26일 1심은 약 1년간의 심리 끝에 “당초 부석사 소유인 이 불상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도난이나 약탈 등 방법으로 일본으로 운반돼 봉안되어 있었다”며 “역사·종교적 가치를 고려할 때 불상 점유자는 불상을 원고인 부석사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판단 근거로는 불상이 제작된 1330년 이후 서산지역에 왜구들이 5차례에 걸쳐 침입했다는 기록과 불상에 화상의 흔적이 있는 점 등을 들었다.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은 불상과 결연문의 진위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은 6년 넘게 이어졌다.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2023년 2심은 “왜구의 약탈 정황은 인정되지만 불상이 제작, 봉안된 14세기 초 고려 사찰 ‘서주 부석사’와 현 부석사가 같은 절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하며 불상이 불법 반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본 민법에 의거, 간논지가 법인격을 취득한 1953년으로부터 20년 이상 불상을 점유했으므로 이미 취득시효가 완성돼 소유권이 넘어갔다고 봤다.

같은 해 10월 26일 대법원은 현재의 부석사는 서주 부석사를 그대로 계승한 권리의 주체가 맞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2심 판단이 일부 틀렸다고 봤다. 그러나 일본 민법에 따라 불상의 소유권이 정상적으로 간논지에 넘어갔다는 판결은 유지했다. 어느 나라의 민법을 적용할지도 쟁점이었지만 대법원은 옛 섭외사법(현 국제사법) 법리에 따라 취득시효가 만료하는 시점에 물건이 소재한 곳의 법을 적용하는 게 맞는다고 판시했다.

부석사는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간논지는 취득시효가 완성된 1973년 1월 26일 당시 일본국 민법에 따라 이 사건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했다”며 일본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부석사 주지인 원우 스님은 “문화재를 빼앗겼던 후손의 입장에서 약탈을 자행했던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라며 “대법원이 약탈을 앞장서서 합법화했다. 전 세계에 내놔도 정말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7년 동안의 법적 다툼은 막을 내렸다. 이후 부석사 측은 “반환 전 불상을 모시고 100일간 법회를 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간논지 측이 이를 수락하면서 불상은 잠시나마 고향에서 송별회를 치를 수 있게 됐다.

복제품이라도 만들고자 했지만…“日측서 난색”

부석사 측은 불상 복제품 2점을 제작해 1점은 연구용으로 활용하고, 나머지 1점은 처음 제작됐을 당시처럼 금동을 입혀 봉안하기 위해 3차원 스캔할 수 있도록 일본 측에 협조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원우 스님은 “일본 측이 저작권을 내세워 난색을 보인다”며 “크게 보면 세계의 문화유산인 불상의 가치가 최대한 활용될 수 있도록 일본 측도 협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석사 측은 불상이 왜구에게 약탈당한 사실과 11년에 걸친 소유권 분쟁 끝에 일본으로 돌아가는 과정 등을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

원우 스님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게 희생된 우리 조상들 귀·코 무덤의 흙을 한 줌이라도 가져와 위령제를 올리고, 문화재 환수 기원 기념관과 함께 공원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오는 24일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서 환수문화유산 기념박물관을 개관한다. 박물관에서는 재단이 그동안 미국 등에서 기증받은 문화재 400여 점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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