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과 응답

2025-02-13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지 벌써 두 달.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한 달. 그런데도 여전히 친위 쿠데타 내란을 완전히 진압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내란을 기획, 실행, 동조했던 전문직종 출신 관료의 반격이 시작됐다.

지난해 12월3일 시민의 헌신으로 친위 쿠데타를 꺾었을 때만 해도 가만히 숨을 죽였다. 제법 반성하는 흉내를 내더니 내란 수괴의 선동이 어느 정도 통하는 것처럼 보이자 ‘영구 없~다 전략’으로 갈아탔다. 국회 청문회 현장, 비상계엄 선포문을 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답한다. “나중에 보니까 양복 뒷주머니에 들어 있더라고요.” 경호처에서 제공한 비화폰을 갖고 있냐고 묻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끔뻑거린다. “보니까 제가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러는 사이 친위 쿠데타에 앞장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대놓고 선동한다. “악의 무리들은 오직 권력욕에 매몰돼 중국·북한과 결탁해 여론조작과 부정선거로 국회를 장악하고, 의회 독재를 이용해 사법·행정을 마비시킴으로써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 나라를 통째로 북한·중국에 갖다 바치고자 한다.” ‘일류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정치인이 이를 이어받아 내란을 특정 정파의 정치 공작으로 몰며 헌재 불복을 선동한다. 극우 유튜버는 이를 증폭해서 서부지법 습격으로 현실화한다.

이에 비한다면 전문직종 관료는 그나마 나은 건가? 문제는 이들이 사회 전반에 냉소주의를 퍼뜨린다는 사실. 전문직종 관료는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 옳지 않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다고 여기고 짐짓 얼간이인 척 순종한다.

이렇게 전문직종 관료가 냉소주의를 퍼뜨릴 때, 대중은 신비주의적 팬덤 정치로 빨려 들어간다. 지하철 1호선 안이다. 노약자석에 앉은 한 남성이 갑자기 유튜브 방송을 크게 튼다. “야, 국민저항권이야. 밀어! 밀어! 야, 판사 나와! 부숴! 부숴!” 폭력 내란 선동을 일삼는 극우 유튜버의 목소리다. 기다렸다는 듯 옆자리 남성이 지팡이를 허공으로 찔러대며 소리친다. “이것들을 총으로 탕탕탕 쏴 직이빼야지, 안 그러니까 이리 나라가 시끄럽다.”

한 가족의 카톡 단톡방이다. 다른 지역에 사는 아들 내외가 설 연휴 때 여행 가서 찍은 자녀의 사진을 공유한다. 예쁘다, 귀엽다, 어머니와 딸이 메시지를 올린다. 옆에서 잠잠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한 영상 링크를 올린다. 딸이 뭔가 하고 클릭해본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란 제목의 한국사 일타강사의 유튜브 영상이다.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의 원흉이 바로 선관위라는 제목으로 준비했습니다.” 딸이 짜증을 내니 아버지가 되레 소리친다. “빨갱이 판사를 척결해야 이 사기 탄핵이 끝난다고.”

전문직종의 냉소주의와 팬덤 정치의 신비주의가 결탁해 우리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훈육된 정신의 단순한 도구로 전락한 영혼 없는 관료는 법의 정신이 아닌 기술에 의지해 통치한다. 유튜브 알고리즘 영상을 끝없이 시청한 대중은 획일성과 극단성으로 가득한 단 하나의 신비로운 증강현실 안에 갇힌다. 이 틈을 타서 정치꾼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냉소주의와 신비주의를 버무린 ‘페이크’ 묘약을 판다. 정녕, 벗어날 길은 없는가?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대안으로 ‘책임윤리’를 내세운다. ‘부름’(calling)과 ‘응답’(response)의 정치! 이는 소통의 다른 말이다.

가족과 친지를 넘어 소통하려면 각자 붙박여 있는 ‘여기 지금’의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게 해주는 보편 언어를 활용해야 한다. 인류가 함께 가꾼 가장 빛나는 보편 언어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우리를 부를 때 응답하면 서로가 ‘자유인’으로 현상하는 공동의 세계가 열린다. 민주주의 언어를 배우고 익혀 매일의 삶에서 부름과 응답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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