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내릴 강설로 인해 길이 미끄러울 예정이니 대중교통 이용, 눈길 미끄럼 등 주의 바랍니다.” 늦은 밤 안내문자를 받았다. 현관에 눈 삽과 장갑을 미리 챙겨놓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복숭아뼈만큼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사는 일이 버거웠던 시절에는 비슷한 문자를 받고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다. 밤새 눈이 온다는, 하늘이 무겁고 땅이 아슬아슬하니 조심하라는 건조한 문구가 내 삶을 관통하는 무심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누구의 삶에나 악천후로 가득 찬 절기가 찾아온다. 신이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면, 더 절절한 예보를 미리 발신할 만큼 막막한 시기 말이다.
사는 일은 때때로 지나치게 미끄럽다. 하나를 잡으면 다른 손에 쥔 것을 놓쳤다. 나의 사정과 무관하게 폭설은 찾아왔다. 홀로 맞기도 하고 둘이 맞기도 했다. 두 사람이 함께 겪는 폭설은, 나누어갖기 때문에 줄어들기도 하지만 둘이 겪기 때문에 곱절로 무거워지기도 했다.
눈이 자주 내리는 나라에 산 적 있다. 거기선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아무도 비슷한 경고를 하지 않았다. 앞을 보기 어려울 만큼 광대한 대설 정도는 내려야 안내문자가 도착했다. 두꺼운 눈발에 머리가 자주 덮였고, 30㎝ 넘게 쌓인 눈 사이를 익숙하게 장화를 신은 채 건넜다. 폭설은 두통이 찾아올 만큼 맹렬한 눈보라를 동반했다. 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 이 정도는 으레 견뎌야 한다는 듯 사람들은 별 불평 없이 반 년 가까운 겨울을 버텼다. 나도 그들처럼 한 시절을 보냈다.
지금 사는 동네에서는 눈이 내려도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지 않아도 된다. 달라진 날씨와 함께 나도 새로운 시절에 접어들었다. 덩굴식물이 한겨울에도 몸을 뻗는 걸 본다. 뒷산의 길목에는 고양이들이 뛰어다니고 박새 떼가 그 위를 지난다. 그들 모두 자신의 겨울을 견디었고 견디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의 폭설을 다 알아볼 수 없다. 개입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당신과 나의 폭설이 순서 없이 여러 시제로 뒤엉킨 이곳에서 매일 새 하루를 시작할 뿐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고 오래 걷는다. 아무것도 찍지 않았지만 어떤 날은 여러 풍경을 어깨에 두른 사람처럼 조금 두둑해진 채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