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산불 나가 난리라 안 캅니까. 비도 이래 안 오고 또 큰불 날까 봐 겁나니더.”
지난 22일 찾아간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주미자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걱정스레 말했다. 그는 2022년 3월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로 집을 잃었다. 화재 후 임시조립주택에 머물다가 지난해 7월에서야 정부 지원금과 자녀들이 준 돈을 더해 작은 집을 마련했다.
당시 울진에 들이닥친 화마는 서울 면적(6만500㏊)의 30%가 넘는 2만923㏊(울진 1만8463㏊·삼척 2460㏊)를 태우고 진화됐다. 산불이 진화되기까지 꼬박 9일 가량이 걸렸고, 울진주민 467명이 주택을 잃거나 피해를 봤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발생한 대형산불 소식은 주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주씨는 “여럿이 경로당에 둘러앉아 뉴스를 보며 걱정한다”며 “또 집이 불타면 어쩌나 싶어 잠을 설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 동해안 지역에 ‘겨울 가뭄’이 계속되면서 산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해안 지역의 기상과 지형이 대형산불을 겪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유사해 산불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30일 대구·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울진의 경우 지난달 13일부터 발효됐던 건조주의보가 40여일 만인 지난 24일에야 해제됐다. 27일까지 눈이 내린 결과다.
설 연휴를 전후로 강원지역에 일부 폭설이 내리긴했지만 겨울 가뭄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다.
지난달 13일부터 이날까지 경북 울진에 내린 누적 강수량은 26.3㎜다. 이 지역 12월과 1월의 평년 강수량(30년 평균)이 각각 33.2㎜, 48.9㎜인 것을 감안하면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도 안된다.
다른 동해안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부터 이날까지 강원도 속초의 누적 강수량은 14.5㎜에 불과했다. 속초의 12월~1월 평년 강수량인 83.6㎜에 크게 못미친다. 영동지역 겨울 강수량 대부분이 평년 대비 80~90%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때문에 겨울철 산불 발생이 잦은 속초·고성·양양은 현재도 건조특보(건조주의보·건조경보)가 발효 중이다.
겨울 가뭄은 대형산불 위험성으로 이어진다.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할 당시에도 강수량이 평년 대비 14.7%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내륙에서 해안으로 부는 국지성 강풍, 건조한 기상환경 등 동해안 지역이 최근 대형산불이 발생한 LA와 유사한 지리적 요건을 갖췄다고 분석하고 있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산불조심기간이 아님에도 연일 건조주의보와 강풍경보가 발령되는 등 LA와 기상조건이 비슷하다”며 “캘리포니아주의 화재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규모가 커질 때 동해안지역도 피해가 커지는 흐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형산불은 2010년대 연평균 1.6건에서 2020년 이후 연평균 6건으로 급증했다”며 “동해안 지역도 대형산불에 상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산불방지대책본부를 한 달 앞당긴 지난 1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또 산불감시원 2556명, 산불전문예방진화대 1128명을 산불 감시 업무에 투입했다. 도 관계자는 “산불 진화용 임차헬기 19대, 소방헬기 4대, 군부대 7대 등 34대의 헬기를 배치했다”며 “산림과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산불 예방활동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