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막연한 기대만으론 영영 해제 안될수도[김광수의 중알중알]

2025-08-28

얼어붙었던 한중 관계만큼 꽁꽁 묶여 있는 한한령의 족쇄가 새 정부 들어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싸늘히 식고 있습니다. 한국이 줄기차게 중국에 요구하는 한한령(한류 콘텐츠 제한령) 해제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 달라진 중국의 상황에 따른 현실 인식과 함께 우리의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순히 한중 관계가 나아진다고 한류 콘텐츠의 중국 수출길이 열리기 쉽지 않은 만큼 중국의 입장 변화에 관계 없는 활로 모색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1992년 이후 조금씩 중국에 확산되던 한국 문화는 90년대 말 HOT, 클론, 베이비복스, NRG, 이정현, 안재욱 등 한국 가수의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한류 열풍’으로 번졌죠. 이어 ‘겨울연가’, ‘대장금’ 등의 드라마를 시작으로 ‘별에서 온 그대’, ‘태양의 후예’ 등으로 인기가 이어졌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인기를 얻었던 이영애, 장나라, 장서희 등의 배우는 중국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요. ‘런닝맨’, ‘무한도전’, ‘아빠 어디 가’ 등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인기를 끌며, 중국에서 같은 콘셉트의 프로그램이 제작되기도 했죠. 한국에게 같은 동양 문화권의 중국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고, 관련 산업도 호황을 이어갔습니다.

중국 대륙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던 한국 문화는 2017년 일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중국은 별다른 이유는 들지 않았습니다만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국의 문화 콘텐츠 유통은 완전히 막혀버렸죠. 이를 두고 우리는 한한령이라고 불렀지만 중국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벌써 8년이 훌쩍 지났습니다만 한한령 해제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최근 대통령 특사단이 중국을 방문했는데, 특사단 단장인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26일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특파원 대상 간담회에서 “넘어야 할 산이 있다”며 한한령 해제가 쉽지 않을 것이란 뜻을 내비쳤죠. 박 전 국회의장은 문화 교류를 통한 반중 정서 개선을 위해 한국의 문화 콘텐츠 개방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유익하고 건강한 분야에 한해 교류를 확대할 수 있다며 즉답을 피했죠. 중국의 화법을 감안하면 완곡한 거절로 해석됩니다. 한국이 원하는 것처럼 완전히 사드 이전으로 돌아가긴 힘들다는 의미고, 유익하고 건강한 한류 콘텐츠는 알아서 개방할테니 기다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윤석열 정부 초기만 해도 한한령 해제 분위기가 반짝 고조된 적도 있습니다. 윤 전 대통령 취임 전인 2021년 말 영화 ‘오! 문희’가 개봉을 하며 기대감을 키웠고, 이듬해 초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중국 IPTV와 지방 방송사를 통해 전파를 탔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취임한 3월에는 한 달 동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인현왕후의 남자’, ‘또 오해영’,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연이어 중국 감독당국의 허가를 받아 방송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한 해빙기를 맞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지만 2023년 윤 전 대통령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뜬금 없이 대만 문제를 거론하며 싸늘하게 식어버렸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한령 해제 기대감의 불씨는 다시 타올랐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달리 중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이어온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중 관계가 개선되고 한한령도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었죠. 일각에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한한령 해제를 기정사실화 하고 2500조 문화시장이 열린다며 그 시기를 5월로 못박기도 했는데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특사단의 발언으로 오히려 당분간은 한한령 해제가 쉽지 않다는 우울한 소식만 확인됐을 뿐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선 약간의 조짐만 보이면 한한령 해제를 외쳐댔습니다. 최근 들어서만도 인디밴드 ‘검정치마’가 공연하고,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중국 법인을 설립하는 등 긍정적인 신호는 줄곧 이어졌죠. 중국에서 한국 아이돌의 ‘팬미팅’도 늘어났고, 해외 드라마의 중국 내 방영 확대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이번에는 진짜’라며 희망을 넘어 확신 수순에 도달했습니다.

기대와 현실은 달랐습니다. 여전히 한한령의 높은 산은 넘기 힘들어 보입니다. 푸젠성 푸저우에서 공연을 펼칠 것이라고 알려졌던 걸그룹 케플러는 일정을 취소했다. 팬미팅으로 허가가 났으나 공연도 가능할 것으로 봤지만 모두 무산됐습니다. 한국 국적 가수의 중국 본토 내 공연은 여전히 요원해 보입니다.

중국 문화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여러 이유를 들며 중국이 쉽사리 장벽을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합니다. 빗장을 풀더라도 산업별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입니다. 물론 그들의 전망이 모두 맞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의견을 내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적어도 현재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특사단이 밝힌 ‘중국에 유익하고 건강한 분야’라는 표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중국인들의 정신 건강을 해치지 않는 것은 물론 나아가 중국의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분야별로 볼 때 일단 판호(게임 서비스 허가권) 발급이 늘어나는 게임 부문은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이 조금씩 기대됩니다. 이는 중국의 게임산업이 그만큼 경쟁력을 지녔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중국의 게임 산업은 최근 몇 년간 글로벌 대작을 잇따라 내놓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죠. 중국만의 콘텐츠를 살린 게임들도 최근 중국을 넘어 전 세계 게임 유저들을 사로잡고 있는데요. 지난해 출시된 ‘검은 신화: 오공’은 화려한 그래픽과 스토리텔링, 다이내믹한 액션 등을 앞세워 세계 각국에서 히트했습니다. 최근 공개된 후속작 ‘검은 신화: 종규’도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요. 게임 분야 만큼은 중국이 한국에 비해 뒤질 게 없다는 의미로 조금씩 시장을 풀어줄 수 있다는 흐름이 예상됩니다.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는 중국이 우려하는 건강함에 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나라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과거 독재 정권 당시의 탄압도 민주화의 과정도 자유롭게 소재로 다루죠. 중국은 한국 작품의 이런 부분을 적잖이 경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공산당 체제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다루고 있는데, 중국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영화나 드라마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인식을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중국이 허용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모두 최소한 정치적인 내용에선 완전히 배제됐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확인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한국의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 제품들에 대한 선호도가 늘어나는 것도 중국 입장에선 마뜩치 않습니다. 한국산 화장품이 중국에서 인기를 얻는데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한 미모의 여배우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모델이 배우 이영애였고, 직접 화장품 브랜드를 중국에 론칭하기도 했을 정도였죠. 물론 중국 화장품의 퀄리티가 좋아진 측멷도 있지만 화면에서 사라진 한국 여배우들로 인해 한국의 화장품도 중국인의 머릿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모든 것들의 노출이 늘어날수록 호기심은 커지고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드라마 ‘별그대’에서 치맥(치킨과 맥주)이 히트를 치면서 중국에서도 치맥 바람이 불었고, 차가운 음료를 선호하지 않던 중국에서도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단순 팬미팅을 넘어 한류 아이돌의 공연은 언제쯤 이뤄질지 관심이 큰데요. 이 부분도 중국에선 경계하는 분야입니다. 일단 아이돌 가수의 공연은 대규모로 이뤄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고작 수백명, 수천명 수준으로는 수지타산도 맞지 않죠. 주최측 입장에선 당연히 최소 1만~2만명, 그보다 규모가 큰 공연을 선호합니다만 중국은 최근 한 장소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대규모 집회 자체를 불허하는 중국은 외국 가수의 대형 공연 개최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입니다. 자칫 공연을 빌미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정부를 향한 불만을 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런 전망도 한 순간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깜짝 선물 보따리를 풀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막연히 기대만 하고 있어서는 언젠가는 비가 내릴 것으로 보고 하늘만 바라보는 인디언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국의 현재 스탠스가 무엇인지, 그러면 우리는 그에 따라 어떤 것들을 할 수 있는지 조금 더 냉정하게 판단하고 변화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김광수 특파원의 ‘중알중알’은 ‘중국을 알고 싶어? 중국을 알려줄게!’의 줄임말입니다. 중국에서 발생한 뉴스의 배경과 원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중국의 특성을 쉽게 전달해 드립니다. 구독을 하시면 유익한 중국 정보를 전달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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