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문다. 벅찬 마음으로 문을 열었던 2024년. 새해 첫날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손수 제작한 연하장(年賀狀)을 국내외 친지·선후배·동료들에게 보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거리·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글로벌 IT문명의 이기(利器)인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그리 힘들지 않게 새해 인사를 보냈던 것이다.
연하장의 배경은 재외동포재단의 제주 근무 당시 찍었던 사진들 중에서 정성껏 골랐다. ‘새로운 날의 이미지’를 물씬 느끼게 할만한 것으로 한정했다. 한라산 등정 중에 짝었던 멋진 설경(雪景) 사진과 서귀포시 법환동 해안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범섬이 담긴 제주 바다 사진이 유력 후보였다. 승자는 남쪽 바다에 은은히 담긴 아침 서광(曙光)이었다.
문제는 연하장에 어떤 문구를 담을 것인가였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문장을 흰 종이 위에 자필(自筆)로 써내려갔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갑진년 새해, 자유와 평화와 번영의 선한 기운이 이 땅끝에서 저 땅끝까지 두루두루 퍼져나가 지구촌 모두가 행복하길 기원합니다”라는 인사에는 전쟁과 기근, 질병과 분쟁, 시기와 질투, 다툼과 미움, 고소와 고발, 사기와 거짓, 조롱과 비난 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구촌 온누리에 하느님의 축복과 정의, 위로와 격려가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서명 앞과 뒤에는 낙관(落款)으로 외향민(外向民) 도장과 아호인 외산(外山) 도장을 찍은 다음 완성된 SNS 연하장을 국내외 각지로 보냈다.
그동안 간간이 소식을 주고 받던 지인들 중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새해 일출 사진과 함께 따뜻한 마음의 덕담을 나눠준 분들도 계셨다. 이분들에게는 “마음이 품는 생각마다, 눈이 가는 눈길마다, 발이 가는 걸음마다, 손이 하는 일마다 모두의 기쁨되고 보람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는 문자로 화답하였다.
이렇게 시작했던 2024년이 마지막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새해 다짐했던 바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는 분들도 있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 마음 뿌듯한 분들도 있다. 그 결과가 어떻든 실망·좌절·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자만·우쭐·착각해서도 안 된다. 옛말인 새옹지마(塞翁之馬), 전화위복(轉禍爲福), 칠전팔기(七顚八起), 호사다마(好事多魔) 등의 교훈이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인생사 자체가 불확실성에 기초한다. 아무리 미리 준비하고 철저하게 구상했어도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있고 예상치 못한 행운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일의 성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요불굴(不撓不屈)과 결국에는 바른 길로 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에 달렸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곳저곳으로 실어 나르느라 고생한 신발의 끈을 다시 매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으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8500만 해내외 동포 한 분 한 분에게 따뜻하고 정감 있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