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탄자 K리그 잔디, 결국 ‘지갑과 마음의 두께’에 달렸다

2025-03-06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잔디가 필수적인데, 대부분의 사람은 선수들에게만 투자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K리그 경기장의 잔디 품질 문제가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시즌 이례적인 추위에 땅이 얼어붙으면서 다치는 선수가 속출하고 있고,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잔디가 푹푹 파이는 고질적인 문제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결국 ‘투자 비용’과 ‘관리 의지’의 문제였다.

“10년 쓰는 잔디, 유럽은 1~2년마다 교체”

한 프로 구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한 번 잔디를 심어놓으면 거의 10년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 구장들은 1~2년에 한 번씩 잔디를 교체한다. “해외 구단들은 잔디에 돈을 투자한다. 최고의 경기력이 나오는 데는 결국 잔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잔디를 완전히 교체하는 데는 한 번에 15억에서 20억원 정도 들어간다. 10년마다 교체하면 연간 1억5000만원, 3~5년마다 교체하면 연간 3억~5억이 필요한 셈이다. 이 관계자는 “구단들이 그만큼의 돈을 투자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추워진 날씨로 잔디 관리의 또 다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추위로 땅이 얼어붙으면서 잔디 표면이 딱딱해져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적절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구장에서는 날씨가 추워질 때 토양이 단단해지면서 쿠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선수들의 관절에 무리가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겨울철에는 일부 구단들이 열기구나 전열등 같은 것을 사용해 잔디를 보호하는데, 비용 문제로 많은 구단이 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와 켄터키 블루그래스의 한계

한 프로구단 잔디 관리 용역 업체 담당자는 “2002년과 2024년 평균 온도를 비교해보면 5~6도 정도 차이가 난다”며 “이 정도면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견디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에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이제는 못 버틴다”고 강조했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국내 축구장에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도입됐다. 그는 “켄터키 블루그래스는 색이 푸르러 보기 좋고, 당시에는 온도가 높지 않아 큰 비용 없이도 관리가 잘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극심한 기후변화로 최근 몇 년 새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켄터키 블루그래스는 한지형 잔디로 추위에는 강하지만, 30도를 넘어가는 고온에서는 생육이 둔화하고 병해가 발생하기 쉽다. 반면 한국 잔디는 난지형으로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잘 버티지만, 겨울에는 휴면기에 들어가 노랗게 변하는 특성이 있다.

프로 구단 잔디 관리 실태

한 프로 구단은 작년 여름 잔디 상태 악화로 시즌 종료 후 잔디 교체를 진행했다. 이 담당자는 “작년 연말에 전체의 3분의 2 정도를 새로 깔았다”며 이로 인해 5월 11일까지 홈 경기를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뿌리가 내려야 하는데, 3~4월에 날씨가 따뜻해져야 뿌리가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며 “이 상태에서 경기하면 다시 망가지기 때문에 최대한 늦춰서 홈 경기를 배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이 구단의 잔디 관리는 외부 조경 업체에서 담당하고 있다. 일반적인 관리 비용만 해도 연간 2~3억원이 든다. 외부 조경 업체 담당자는 기업 구단이라고 특별한 혜택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몇몇 프로 구단들은 여름철 고온다습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송풍기를 도입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여름에 고온에 다습하니까 잔디가 죽는데, 몇몇 구단들이 송풍기를 틀어서 바람을 회전시켜준다”고 설명했다.

한 구단 잔디 관리 담당자는 “화학 비료를 많이 쓰게 되면 잔디에 데미지가 있어서 올해는 미생물 위주로 잔디 관리를 해보려고 한다”며 “미생물이 토양을 변화시키고 뿌리 활성화를 시켜주니까 여름에 화학 비료보다 더 잘 버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잔디로 전환도 고려해봐야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 기후에 적응된 한국 잔디를 심는 것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한 프로구단 잔디 담당자는 “한국 잔디는 관리하기가 쉽고, 5월부터 생육이 활성화되어 여름에 가장 좋다”며 “한국 잔디는 굉장히 튼튼해서 푹푹 파이거나 죽을 일도 없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그는 “하이브리드 잔디가 그나마 대처 방안이고, 그 다음으로 빨리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한다면 한국 잔디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추춘제로 전환되면 겨울철 경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국 잔디는 대체적으로 혹한기에 약하다. 토양이 딱딱해지면서 선수들 부상 위험도 있고, 뛰는 것이 더 힘들어지는 것은 단점이다.

프로축구연맹은 매년 잔디 평가를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각 구단의 몫이다. 한 관계자는 “연맹에서 평가하고 어드바이스는 해주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각 관계 업체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맹에서는 ‘각 구단의 상황이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는데, 올해부터는 강제적으로 잔디가 안 좋으면 홈 경기를 못 하고 제3구장에서 하도록 했다”며 “그러나 웬만한 경우는 홈 어드밴티지를 적용해 홈 경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잔디 관리의 핵심은 결국 인식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CEO나 사무국장들이 잔디에 대한 중요성을 정말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이 선수들에게만 투자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선수들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들의 퍼포먼스는 결국 잔디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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