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한국형 자율주행 모델, 운수업계와 협업서 완성

2025-12-08

자율주행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상용화라는 관점에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단계가 많다. 2024년 기준 국내에서 운행 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 471대 중 470대가 유인 허가라는 사실은 이 산업이 아직 운영 기반의 데이터 축적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국내 기술이 뒤처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계 선두 기업 또한 무인 단계로 곧바로 전환하지 못했다. 글로벌 톱티어인 구글 웨이모와 제너럴모터스(GM) 크루즈는 시범 운행 이후 완전 무인운행까지 9년이 필요했다. 자율주행 국가준비지수 세계 1위 싱가포르도 지난해 기준 44대 중 단 1대만 무인 허가를 받았다. 무인 전환은 장기간 실제 운영 경험 없이는 갈 수 없는 단계다.

따라서 한국이 자율주행 상용화를 조기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술기업 단독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자율주행은 기술 고도화와 함께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안정적 운영 경험이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까지 국내 실증이 기술 검증 중심이었다면, 이제 운영 중심의 단계로 전환해야 한다.

이 전환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핵심은 한국 여객교통 구조다. 전체 이동거리 약 63%가 승용차, 17%가 철도, 17%가 버스·택시로 구성된 한국은 도로 기반 여객운송 비중이 매우 높다.

이는 여객운송(버스·택시)과 철도가 대중교통 내에서 거의 동일한 비중을 차지하는 독특한 구조이며 자율주행 도입 시 가장 큰 변화가 버스·택시 영역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율주행은 여러 사람을 효율적으로 나르는 이동수단에서 가장 큰 경제성을 만들기 때문에 한국 자율주행 전환은 곧 버스·택시의 서비스 혁신과 산업 재편으로 이어진다.

이미 국내에서도 이러한 변화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가 있다. 지방 소도시인 옥천에서는 청소년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버스 운영 종료 이후 야간 시간대 수요응답형교통(DRT) 서비스를 제공한 바 있다. 노선 기반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시간대와 생활권을 기술 기반 서비스가 보완한 사례로, 자율주행 기술이 향후 지역 교통복지와 공공 이동서비스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령화·인구감소·교통소외지역 확대 등 전국적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초기 모델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자율주행 상용화는 특정 교통수단만의 과제가 아니다. 버스는 노선 기반의 안정적 운행과 대규모 수송 경험을 갖고 있고 택시는 실시간 수요 대응과 지역 밀착형 이동 서비스에 강점을 가진다. 이러한 서로 다른 역량이 자율주행 기술과 균형 있게 결합될 때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 모델이 완성될 수 있다. 기술기업 단독 운영은 비용과 위험이 크기 때문에, 한국형 모델은 다양한 운송 주체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구축할 수 있다.

한국은 이러한 협업 구조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갖췄다. 준공영제를 중심으로 한 공공교통 운영 경험, 택시 정책의 공공성, 지자체 주도의 교통서비스 관리체계 등은 신기술 초기 단계 불확실성을 낮추고 안정적 도입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만의 자산이다. 공공교통 기반이 강한 국가는 자율주행 초기 상용화에서 분명한 우위를 가진다.

또, 자율주행 시대는 기존 운수업 종사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된다. 자율주행은 운전자를 단순히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제·데이터 운영·안전관리 등 새로운 직무를 요구한다. 버스와 택시 종사자는 이러한 역할로 자연스럽게 확장될 수 있으며, 이는 자율주행이 노동과 충돌하는 기술이 아니라 산업을 고도화하는 기술임을 보여준다.

정부 역시 기술 중심의 임시운행 허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운수사업자 전체가 자율주행을 정식 서비스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버스·택시·지역형 이동수단을 모두 포괄하는 통합 교통체계 내에서 자율주행을 단계적으로 편입해야 한다. 지자체 교통예산과 공공교통 인프라를 활용하면 지속 가능한 상용화 모델을 조기 구축할 수 있다.

한국은 지금 자율주행 상용화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있다. 기술 경쟁에서 운영 경쟁 시대로 이동하는 지금 한국은 공공교통 기반 운송 인프라와 운수업계 전반 협업을 통해 세계와 다른 방식의 상용화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자율주행은 기술기업 단독 성과로 완성되지 않는다. 버스·택시를 포함한 다양한 이동 서비스 제공자와 협력, 공공교통 기반 생태계, 정교한 제도 설계를 통해 실질적 상용화가 가능하다.

결국 자율주행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운영에서 완성된다. 한국은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산업적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운수 업계와 기술 기업이 상생을 전제로 한 협업 구조를 신속히 만드는 일이다. 이 구조가 정착되는 순간 한국은 단순한 기술 추격자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자율주행을 실질적으로 상용화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hjh@autoa2z.co.kr

〈필자〉한지형 대표는 한양대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 연구소에 입사했다. 현대차 미국 라스베이거스 최초 주·야간 자율주행, 서울·평창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후 오토노머스에이투지(Autonomous A2Z)를 창업해 5년 만에 국내 1위, 세계 13위 독보적 성과를 창출했다. 현재 4차산업혁명위원회, 한국교통안전공단,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서도 모빌리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모빌리티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