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에서도, 아시안게임에서도, 세계선수권에서도 양궁의 만점은 10점이었습니다. 과녁판 위치에 따라 1점에서 10점을 부여하는 것이 양궁의 룰이죠. 그런데 지난달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린 양궁 월드컵 3차 대회는 좀 특별했습니다. 10점 안쪽의 가장 작은 과녁, 우리가 '엑스텐'이라고 부르는 위치를 맞히면, 1점을 더해 11점으로 인정하기로 한 겁니다. 세계양궁연맹이 '11점제'가 양궁의 재미를 더할 수 있을지 지난 3차 월드컵에서 사실상 테스트해 본 겁니다. 3차 대회가 끝난 이후 대한양궁협회는 11점제의 영향에 대해 최근 세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 자료를 살펴봤는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 '11점제' 최대 이변은? 세계 최강 김우진의 32강전 패배
리커브의 경우 기존 10점 과녁의 중심부인 엑스텐은 지름이 6.1cm에 불과합니다. 70m 떨어진 거리에서 500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 크기의 원을 명중시키면 11점인 것이죠. 11점제에서 리커브 개인전은 세트당 최대 33점, 혼성 단체전은 최대 44점, 남녀 단체전은 최대 66점을 획득할 수 있어서, 기존보다 3~6점까지 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고 승패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3차 월드컵에서 '11점제'를 실험적으로 도입했는데, 가장 큰 이변은 바로 세계 최강자 김우진의 32강전 패배였습니다. 김우진은 32강전에서 세계 랭킹 10위의 스페인의 안드레스 테미노와 맞붙어 세트 점수 4-6으로 패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는 양궁협회 분석 결과, 11점제가 없었다면 김우진이 승리하는 경기였습니다. 3세트에서 김우진은 10-10-9를 쐈는데, 상대가 11-11-8, 엑스텐을 두 발 쏘면서 한 점을 앞서게 된 겁니다. 결국 종전 방식대로면 김우진이 세트 점수 6-2로 16강에 진출했지만, 11점제는 승패를 뒤바꾼 셈입니다.

반면, 여자부 세계 최강 임시현은 11점제의 득을 살짝 보기도 했습니다. 16강전에서 우크라이나의 아나스타샤 파블로바에 6-2로 승리했는데, 이때 임시현은 4세트까지 전체 12발의 화살 중 5발을 엑스텐(11점)에 명중시키며 3세트를 먼저 따냈습니다. 만약 10점제 방식이었다면, 이 경기는 5세트까지 가는 접전이 펼쳐졌을 것이고, 승패는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 한국 양궁에 불리? 유리? "결국 10점을 쏠 수 있어야, 11점 획득도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볼 때 '11점제'는 전체적으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양궁은 조금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11점제의 이득을 보려면, 결국 엑스텐을 맞힐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엑스텐을 맞히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지난 5월, 중국에서 열린 월드컵 2차 대회 단체전 기록을 분석해 보면, 리커브 남자 대표팀은 전체 화살의 59%를 10점에 꽂아 넣었고, 10점 중 47%가 엑스텐이었습니다. 반면, 외국 선수 평균은, 10점 화살 비율이 40%로 한국보다 낮았고, 그중에서도 31%만이 엑스텐에 들어갔습니다.
여자 대표팀도 마찬가지인데, 한국 대표팀은 화살의 46%가 10점, 이 중 45%가 엑스텐이었던 것에 비해 외국 선수들은 10점 비율이 27%, 엑스텐은 이 중 25%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10점을 많이 쏴야 엑스텐에 들어갈 확률도 높아지는데, 한국 양궁은 현재 명중 비율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서 매우 높습니다.
다만, 선수들의 의견은 좀 엇갈립니다. 엑스텐으로 1점을 더 주니까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도박성이 심해서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11점제를 경험한 뒤 김우진은 "엑스텐은 사실 운이 더 많이 작용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중앙에 더 가깝게 쏘려고 하다 보니 힘이 많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양궁을 재미있게 봐주시면, 선수들도 힘을 내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전했습니다.
■ LA 올림픽에 양궁 '11점제'? 이미 올림픽 준비 시작한 한국 양궁 "문제 없다"
11점제는 현재 진행 중인 4차 월드컵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실험적으로 한 대회에서 적용해 본 것으로, 올 시즌 다시 예정된 대회는 없습니다. 9월 광주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도 종전대로 10점제입니다.
하지만 세계양궁연맹은 11점제를 계속 검토할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김우진의 탈락이라는 이변이, 세계양궁연맹을 더 고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양궁 규칙은 세계 최강 한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많이 변화해 왔기 때문이죠.
구체적인 논의는 아직 없지만, 양궁협회는 만약 내년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도입된다면 2028년 LA 올림픽에서도 11점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점제든, 11점제든 한국 양궁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양궁협회는 이미 LA 현지에서 올림픽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경기장과 훈련장, 숙소 등 올림픽 전반에 대해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습니다. 경기 규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LA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컴파운드 종목까지도, 훈련 방법 등에서 11점제 도입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인 이유, 바로 이렇게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철저하게 준비하기 때문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