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를 떠나 북쪽으로 180km 떨어져 있는 스테판츠민다에 도착했다. 새로운 숙소에 방문을 여는데 사과꽃이 환하다. 트빌리시의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가 그러하듯 조지아의 수종이 한국과 거의 비슷해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눈이 녹지 않은 설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차경을 숙소 침대에 누워 바라보자니 비현실적인 풍경에 방문을 열 때마다 마치 동화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카즈베기’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이번 조지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위해 불을 선물하면서 그의 고통이 시작된 곳.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걸려 제우스가 보낸 독수리가 날마다 날아와서 그의 간을 쪼아 먹었다. 밤이 되면 간은 다시 자라났고 프로메테우스는 불굴의 의지로 버틴다. 자신을 대신해 죽음을 선택할 또 다른 고귀한 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될 운명. 영웅 헤라클래스의 도움으로 독수리는 죽고 그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서사는 아마도 예술가들에게 가장 많은 이야기를 제공하는 신화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상상했던 그대로 절벽과 높은 산 사이로 흘러넘치는 계곡 사이를 날아다니는 검은 독수리. 인간이 도저히 가닿을 수도 없을 것 같은 풍광에 도착하자마자 압도되고 말았다.
마을에서 마주 보는 산꼭대기에는 게르게티츠민다 사메바 수도원이 보인다. 조지아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스테판츠민다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 해발 2300m 설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도원은 사방에서 보아도 위엄이 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조지아 교회의 성물을 대피시킨 곳. 카즈베기에 묵고 있는 동안 숙소 문을 열면 항상 그 성당이 마주하게 된다. 어떤 날은 안개에 휩싸여 있고 또 어느 날은 석양에 붉게 물들어 있고 어느 날은 구름에 사라지기도 한다.
눈. 비. 햇살. 천둥. 번개. 우박. 바람까지. 하루 동안 사계와 날씨와 모든 자연이 다녀가는 조지아 스테판츠민다에서 5일을 머물렀다. 대체로 잘 알려진 주타 마을에서 차우키 설산을 바라보며 걷게 되는 주타 트레킹과 테르기(Tergi) 강의 발원지인 곳으로 흥미로운 석회화가 있는 트루소 계곡을 걷는 코스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한다. 주타 트레킹은 그리 힘들지 않으면서 조지아가 가진 특유의 풍광을 감상하기에 좋다. 초보자도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다. 다만 빙하가 녹아 계곡을 타고 흐르면서 건너게 되는 강이 있는데 설산이 녹는 시기에는 수량이 많아져 위험하다. 하지만 여행자들끼리 도우며 충분히 건널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주타와 트루소 계곡의 절경은 사계로 아름다워 매체를 검색하면 쉽게 볼 수 있는데 세계 여행자들이 조지아를 방문할 때 가장 환상을 가지고 다녀가는 곳이다. 카즈베기 마을 안에 있는 여행사에서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날씨가 좋은 날을 잡아 예약해두면 아침에 편리하게 여정을 소화할 수 있다. 패키지가 아니라 개별 여정이라면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이삼일은 더 넉넉하게 머무는 것이 좋다.
카즈베기에서 러시아 국경까지는 차로 20여 분이면 닿게 된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러시아가 있어 조지아는 더 지정학적으로 주변의 침략을 받아 전란을 많이 겪게 된다. 국경 근처 오랜 전통으로 와인과 위스키 차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다이아리 수도원에도 들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술을 즐겨 하지 않지만 일행들과 조지아의 와인에 많은 기대를 하고 한잔 씩 맛을 보며 취해가던 여정 중에 만난 가장 깊은 향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국의 지인들과 나누기 위해 그곳에서 차차와 와인을 샀다.
마침 카즈베기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한국의 대통령 선거 개표가 시작되었다. 친구와 마을 끝 와인샵에서 축배를 들기 위해 스파클링 화이트 샴페인을 사서 손에 한 병씩 들고 숙소로 오는 길. 풀을 뜯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세 마리 소가 대문을 열어달라 음매 음매 서 있는 순한 풍경을 만났다. 틈틈이 마을을 산책할 때마다 떠나기도 전에 그리움이 인다. 나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될까.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 밖의 웅장함에 대하여는 우연인지 배낭에 넣어 온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 서문 한 문장이 마음에 닿아 옮겨본다.
“너는 이렇게 여기에 살아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먼 곳을 오래 여행할 때 가장 궁금한 것이 경비이다. 이번 조지아 여정은 일행이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패키지로도 많이 간다고 해서 알아보았는데 거의 비행기 표까지 배가 넘는 비용이었다. 물론 호텔의 급과 음식, 가이드 비용까지 포함이겠지만 더 여비를 아껴 장기로 가고 싶다면 굳이 패키지 여행이 아니더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조지아는 여행 정보가 많고 안전 측면에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추천을 한다면 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인원을 모아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한다. 이번 여정도 함께 다니는 일행이 네 명이었기 때문에 따로 교통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 택시를 타거나 마슈르카라는 미니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시간을 더 아껴 쓸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조지아에서 머무는 동안 숙소도 가격별로 다양하게 선택이 가능하고 용이하게 되어 있었다. 다만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우기나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만 피하면 말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한동안 휘몰아치는 허무감에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여정을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잠시 만난 자리에서 잘 다녀왔냐고 질문을 한다.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어디 바람처럼 떠돌다 들판 어디쯤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며 죽을 것 같다고 웃으며 대답했더니 가만히 듣던 k 작가가 그런다. “저는 러시아 어디 제 죽을 곳을 벌써 결정해놓았어요.”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치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무덤을 만들어 놓고 어떤 옷을 입혀줄 것이며 음악은 이렇게 틀면 어떨까 부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며 스테판트민다를 떠올리게 된다. 신화의 시작이자 마지막을 장식할 곳으로 조지아는 모자람이 없다.
글을 쓰는 시간에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선율에 홀려 길을 잃기 때문이다. 반대로 음악을 듣는 시간에도 되도록 다른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작곡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곡을 만들고 서사를 그려내었는지 집중하게 된다. 조지아를 다녀와서 프로메테우스를 주제로 만든 곡들을 따로 찾아들었다.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합창과 가곡, 교향시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조지아의 두 번째 여정 스테판츠민다의 마지막 글은 프로메테우스 20세에 작곡한 슈베르트의 가곡 D.674에 담긴 괴테의 시 마지막 부분을 옮겨본다.
“…당신을 공경하라니, 어째서? 당신은 괴로운 사람의 고통을 덜어준 적 있었는가. 불안에 떠는 사람의 눈물을 달래준 적 있었는가. 나를 사나이로 단련시킨 것은 나와 당신의 주인인 전능한 시간과 영원한 운명 아닌가// 어쩌면 당신은 생각하겠지. 내가 삶을 증오할 거라고. 꽃 같은 꿈들을 모두 피우지 못한 탓에 황무지로 도망가리라고,// 나는 여기에 앉아서 인간을 빚고 있노라. 나의 형상을 따라서 나를 닮은 종족을, 나와 똑같이.”
-원문 번역 출처 피종호의 아름다운 독일시와 가곡 中-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저마다 가진 혁명과 물음, 반항, 가곡을 듣고 있자니 먹구름이 몰려오다 하얀 설산을 드러내는 카즈베기의 깊은 계곡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세계 각국에서 모여드는 여행자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도 함께.
최영실 포토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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